[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2]

기념하거나 숭상하거나

한국의 대표 동상 이순신은 수도 광화문 앞에 칼을 들고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데, 한 외국인이 보고는 “제너럴 리는 왼손잡이였습니까?” 물었다 한다.
칼을 왼손에 들어야 하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으니 왼손잡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그것이 옳은 지적이기는 해도 이순신은 오늘도 왼손잡이인 채로 서 있다.

러시아, 폴란드, 독일에도 엄청 많은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그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가 전쟁 영웅(이순신, 김유신, 을지문덕, 맥아더 등)이 주류인 한국과 달리 다양한 동상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청동도 많지만 대리석 동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왜 동상을 세울까?
구국의 영웅이어서? 사회에 헌신했기에? 대학을 세웠기에? 착한 일을 했기에? 실존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에게 행복과 꿈을 안겨 주었기에?
어쩌면 그 모두일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멋을 위해서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나,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동상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그 아래에서 멋진 사진 한 장은 찍을 수 있기에........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래피티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미가 분명해서는 안 되며
알쏭달쏭 해야 하고
“으떤 놈의 짜슥이 이곳에 낙서를 했담!”
어른들이 욕을 퍼부을 곳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래피티(graffiti art)의 생명이다.

스프레이로 벽에 그림(혹은 글자)을 그리는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백과사전에서는 2차대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애초에는 걸음마 수준이었으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주택, 공장의 벽, 지하보도, 굴다리, 철거 예정 판자촌 등에 다양한 그래피티가 등장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이나 남미에 가면 다양하고 멋진 그래피티를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래피티의 성지라 불리는 뉴욕에서 워싱턴DC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이 세상의 온갖 그래피티가 넘쳐나고, 심지어 1km가 넘는 그래피티도 있다.

누가, 왜 그래피티를 만들까?
어쩌면 사회에 대한 반항, 욕망의 표출, 예술의 한 방법, 자신의 표현, 앙갚음의 하나일 것이며, 어쩌면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온통 하얀 벽보다는 그림이 그려진 벽이 훨씬 낫고, 그것을 허용하는 국가가 그만큼 자유롭다는 뜻 아닐까?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차창 풍경이 어느 순간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래피티로 바뀌었다. 그곳이 처음엔 베를린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역이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예술의 여러 모습

벽을 사이에 두고
남자는 여자가 궁금해 늑대처럼 들여다보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여우처럼 들여다본다.
현대인의 관음증을 묘사한 이 조각 작품은 러시아 어느 도시의 공연장 앞에 서 있다.

나는 ‘저런 늑대 같은 사내가 아니다’라고 방어벽을 칠 수 있는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이며,
나는 ‘문구멍으로 훔쳐보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가 아니다’라고 자신할 여자는 몇이나 될까?
만일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도덕 교과서대로만 산다면 세상은 정말 밥맛없는 곳이 될 것이다.

호텔 벽에 걸려 있는 무시무시한 벽화는 무자비한 침략자와 용맹한 방어자의 대결을 웅장하게 보여준다. 호랑이까지 덤벼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과연 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을까?
말을 타고 진군하는 저 병사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19박 20일 동안 러시아 여러 도시를 비롯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독일을 거쳤으니 많은 사람과 풍경, 건물 등을 만난 건 당연한 일. 그런데 스치듯 본 여러 장면 가운데 유독 기억나는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본 조각 작품. 남자와 여자의 속성을 단순 명료하게 형상화했다. Ⓒ김인철
모스크바 시립 박물관의 작은 벽 모퉁이에 그려진 새 벽화도 인상적이었다. Ⓒ김인철
어느 호텔 벽에 걸려 있던 전투 벽화도 그중 하나.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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