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의 달빛생각]

[오피니언타임스=이루나] 어린이집 행사에 다녀왔다. 아빠들만 참여하는 특이한 프로그램이었다. 평일 저녁 5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4~7세 자녀들의 아빠들이 30명 넘게 모였다. 어렵게 연차를 쓰거나,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달려왔을 터이다. 드레스 코드는 흰색 티와 청바지이다. 예비군도 끝난 30~40대 남자들이 같은 옷을 입고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빠끼리도 아직 낯설고 데면데면하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빠와 자녀 간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놀이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아빠들은 슈퍼맨 복장을 하고 아이들의 영웅으로 변신했다. 주머니에 숨겨둔 사탕을 더듬어 찾아내고, 줄기차게 뽀뽀를 하기도 하고, 효과음에 맞추어 비행기를 태워주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은 아빠와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다들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잔뜩 흥분한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내 목에 걸린 이름표가 날린다. OO아빠라는 이름표가 선명하다.

Ⓒ픽사베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아빠라는 단어의 주인이 되었다. 매번 부르기만 한 이름인데, 아빠라는 부름에 대답을 해야 했다. 슈퍼맨이 손쉽게 어려운 일을 처리하듯 아이가 부르면 놀아줘야 하고, 회사에 나가 돈도 벌어와야 한다. 아낌없는 나무처럼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나도 아이에게 그러하려 한다.

아빠는 언제까지 아이의 슈퍼맨이 되어야 할까? 사랑하는 자녀의 얼굴을 보면 언제라도 모든걸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저 겉으로 센 척하는 것. 소시민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아빠들은 마네킹처럼 아무 표정이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무사히 버텨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퇴근길에는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붕어빵이라도 사 들고 간다. 아이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며.

난 어떤 아빠일까? 정말 슈퍼맨으로 불릴 자격이 있기나 한 걸까? 이토록 험한 세상에서 저 조그만 생명의 미래를 든든히 지켜낼 만큼 난 강한 존재일까? 나의 아버지처럼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단히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져보지만, 아직 자신이 없다. 아빠라는 단어는 참 무겁다. 내 이름은 3글자이고, 아빠는 2글자인데, 내 이름보다 몇 배는 무거운 것 같다. 이름을 널리 빛내는 것보다, 아빠라는 단어에 충실히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어느덧 아이가 5살이 되었다. 놀이동산의 웬만한 기구는 탈 만큼 키도 훌쩍 자랐고, 몸무게도 20kg 쌀 한 포대를 넘어섰다. 대화할 때도 아이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감정의 변화 폭도 커졌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쑥쑥 자라고 있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아빠의 그릇도 커져야 하는데, 점점 내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간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토라지는 일이 늘어난다. 슈퍼맨은커녕 방구석 꼰대다. 아내가 조심스레 조언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독히도 싫은 월요일 아침. 출근 전에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본다. 보들보들한 살결과, 아직은 조막만한 손가락이 앙증맞다. 이 손으로 용감하게 세계를 구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저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기를. 현관문을 나서니 안개 자욱한 아침 공기가 무겁게 가슴 속을 파고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몸속 깊이 똬리 튼 불안감을 내뱉어 본다. 그리고 애써 혼잣말을 되뇐다. 그래! 난 아빠다!

이루나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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