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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가 우리 시대의 동화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지은성의 변두리의 시선]
지은성 | 승인 2019.11.21 09:56

#1

일개 신입사원이 사장님의 존함을 제집 개 이름 부르듯 함부로 부른다. 그것도 꼭 예산이 부족하거나 업무의 책임 소재가 문제가 되는 난감한 상황에만. 주변 동료들은 신입의 돌발행동에 경악하지만, 정작 신입은 이런 반응을 즐기는 눈치다…. 이런 괘씸한 놈이 있나.

#2

신입사원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근무 중에도 기분 내키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상하 고하를 막론하고 돌직구를 남발하기 일쑤다. 까마득한 선배의 지적에는 잔소리 말라며 되레 성을 낸다. 하긴 사장에게도 맞먹는 녀석인데 그깟 선배가 대수랴. 놈이 가는 곳마다 인성 지적이 뒤따르지만, 신입은 당당하다.

“취향은 사바사잖아, 취존부탁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취향을 존중해주길 부탁해)!”

요즘 최고로 잘 나가는 캐릭터 펭수의 이야기다. 펭수는 자신을 '최고의 크리에이터라는 꿈을 찾아 남극에서 한국으로 헤엄쳐 온 펭귄'이라고 소개한다. 또 본인 주장에 따르면 녀석은 2,000평 규모의 EBS 소품실에서 기거하는 교육 방송의 유일무이한 연습생이다. 목표는 더 황당하다. 교육 방송과는 공통분모가 1도 없어 보이는 BTS(방탄소년단)다.

사실 이런 프로필을 곧이곧대로 믿는 시청자는 없다. EBS 측도 굳이 속이려는 의도가 없어 보인다. 만일 진지하게 속이려고 했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으리라. 적어도 동태를 연상시키는 저 눈부터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바꾸는 성의 말이다. 펭수의 불분명한 출신성분과 별개로 녀석의 인기만은 분명하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이미 60만 명을 넘어섰고, 영상마다 최소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기의 확장세다. 구독자가 10만 명이 되기까지 만 4개월이 걸렸지만, 60만까지는 그로부터 불과 1달 반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펭수의 폭발적 인기는 어른들, 특히 20~30대의 호응이 주효했다. 태생이 교육 방송의 캐릭터임에도 펭수는 이례적으로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나도 여자친구의 권유로 펭수 영상을 시청한 이후 극성팬이 돼버렸다. 우리가 펭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펭수가 우리 세대의 잠재된 욕망을 은유하는 동화 속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동화는 현실에서 쉽사리 이룰 수 없는 대중의 욕구를 대변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흥부전」은 정직한 부에 대한 열망을, 「춘향전」은 부덕한 지배계층에 대한 민초의 소극적 저항의식을 함축했다. 20~30대도 펭수에게서 우리 세대의 잠재된 욕망과 그 실현을 본 것이다. 기성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해 자신의 자아를 지키는 펭수에게 합리적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우리 세대가 열광하는 이유다.

하지만 동화에서 느끼는 환희의 크기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의 크기다. 우리는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욕구일수록 더 강하게 열망하기 때문이다. 펭수도 예외는 아니다. 펭귄 탈을 벗은 노동자 P 씨가 고용주 EBS와 그 사장에게 예전처럼 돌직구를 날리리라곤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펭귄 탈을 벗고 나면 펭수도 별수 없는 소시민인 것이다. 그래서 펭수가 뒤집어쓴 펭귄 탈은 우리가 동화와 현실을 구분 짓는 위태로운 경계선이자, 펭수에게 허락된 일탈의 임계선일지 모른다.

펭수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녀석은 우리에게 충분히 발칙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것만으로도 펭수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인기와 관심의 자격은 충분하다. 이젠 우리 몫이다. 펭수는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줬다. 책임감 있는 개인주의가 기성의 권위와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펭수의 기행이 그토록 통쾌하고 짜릿했다면 우리도 현실에서 펭수의 펭귄 탈을 잠시 써보는 것은 어떨까? 취향은 사바사고, 취존부탁이니까.

 

지은성  soul_to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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