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 자료은닉 등 공정위 조사 조직적 방해"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대기업들의 고질적인 하도급 위반행위는 언제쯤이나 발본색원될 수 있을까? 

1981년 출범한 공정거래위가 40년 가까이 대기업들의 상습적인 하도급 위반과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위반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공정위 조사기법이 발달하고 처벌강도가 전보다 강화됐다고 하나 대기업들의 위반양태가 각종 편법에다 자료은닉 등 다양하게 진화하면서 ‘뛰는 공정위' 위에 '나는 대기업’ 꼴이 돼버렸습니다.  '다시는 법 위반 엄두를 못낼' 정도로 과징금을 징벌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18일 공정위가 밝힌  현대중공업 등의 불법 행위는 위반도 위반이지만 자료은닉 등 공정거래위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까지 하는, 대기업의 추악한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주)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208억원)을 물리고 시정명령과 함께 법인을 고발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조사를 방해한 한국조선해양(주)엔 조사방해 과태료(법인 1억원/임직원 2인 2,500만원)를 물렸습니다.

공정위는 “선시공 후계약 방식으로 사전에 하도급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하는 조선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엄중 조치했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연 매출 수조원대 대기업에 '껌값 수준'의 과징금이 징벌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됩니다.

공정위 발표내용

※2019년 6월, 기존 ‘현대중공업(주)’가 ‘한국조선해양(주)’로 사명을 변경하여 지주회사가 되고, 분할 신설회사로서 동일한 이름의 ‘현대중공업(주)’를 설립하여 기존 사업을 영위하게 했다. 이 사건 과징금 부과 대상은 분할 신설회사 현대중공업(주)이다. 조사 진행 중에 회사 분할이 이루어진 바, 과징금의 경우 분할 신설회사에게 부과할 수 있는 근거 규정(공정거래법 제55조의3 제3항)에 따라 현대중공업(주)에게 부과하고, 나머지 제재 조치는 존속회사인 한국조선해양(주)에게 부과했다.

[사전 서면발급의무 위반]

한국조선해양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7개 사내하도급업체에게 48,529건의 선박 및 해양플랜트 제조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 및 하도급대금 등 주요 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작업이 이미 시작된 후에 발급했다.

작업이 시작된 후 짧게는 1일, 최대 416일이 지난 후에 계약서를 발급했으며 48,529건의 평균 지연일은 9.43일. 이로 인해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 및 대금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 작업을 진행한 뒤에 한국조선해양이 사후에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됐다.

[일률적 비율로 단가인하해 하도급대금 결정]

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12월 선박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 하도급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10% 단가 인하를 해줄 것을 요청했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간담회 이후 이루어진 단가계약 갱신 과정에서 하도급업체들의 단가를 일률적으로 10% 내렸고 2016년 상반기 9만여 건의 발주내역에서 48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51억원의 하도급대금을 인하한 사실이 확인됐다.

48개 하도급업체는 밸브, 파이프, 엔진블록, 판넬 등 납품하는 품목이 상이하고 원자재, 거래 규모, 경영상황도 각각 다르며 일률적 비율로 단가를 내릴만한 정당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제조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대금 결정]

한국조선해양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사내 하도급업체에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하지 않은 채 1,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고 작업이 진행된 이후에 사내 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 작업 현장에서 추가공사가 발생하면 사내하도급업체에게 직접 작업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한국조선해양의 생산부서가 실제 작업에 소요되는 ‘공수’를 바탕으로 추가공수를 산정해 예산부서에 예산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조선해양 예산부서는 합리적·객관적인 삭감 근거없이 생산부서가 요청한 공수를 삭감했고 이 과정에서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하도급대금을 받을 사내하 도급업체와의 협의절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 공수계약의 하도급대금은 ‘공수’ 와 ‘계약단가’를 곱하여 결정되는데, 작업에 소요되는 ‘공수’는 한국조선해양이 임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반면, ‘계약단가’는 계약기간 동안 고정된 값이다. 따라서 한국조선해양은 공수를 임의로 적게 인정해주는 방법을 통해 사내하도급업체들에게 지급할 하도급대금을 삭감한 것이다.

공정위는 사내하도급업체의 거래 특성상 제조원가의 대부분이 인건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사내협력사들의 인건비 구조·고용노동부 실태조사 자료·실제 채용 공고 사례 등을 바탕으로 작업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1공수 당 원가’ 기준을 판단했다. 그 결과 한국조선해양의 공수 삭감 과정에서 1,785건의 추가공사 하도급대금이 하도급업체의 최소한의 제조원가 수준보다도 낮게 결정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하도급대금 결정 과정에 사내 하도급업체와의 실질적인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끝난 후 한국조선해양이 사후적으로 결정한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조사방해]

한국조선해양 및 소속 직원들은 2018년 10월에 진행된 공정위 현장조사와 관련해 조직적으로 조사대상 부서의 273개 저장장치(HDD) 및 101대 컴퓨터(PC)를 교체했으며 관련 중요 자료들을 사내망의 공유 폴더 및 외부저장장치(외장HDD)에 은닉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자의 저장장치가 교체된 사실 및 중요 자료를 별도로 보관한 외부저장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러한 행위에 조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교체된 저장장치 및 자료 은닉용으로 사용한 외부저장장치 제출을 요구했으나 한국조선해양은 제출을 거부하고 이를 은닉 또는 폐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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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도급업체 공수계약 관련 개념>

#공수(MAN-HOUR) : 작업 물량을 노동시간 단위로 변환한 것으로, 물량에 일정한 산식(품셈 또는 임의의 기준)을 적용하여 정해짐

#품셈 : 단위작업 당 소요되는 시간을 한국조선해양이 공종별로 설정한 산식

#계약단가 : 한국조선해양과 사내하도급업체들이 연간 계약으로 정하는 1공수당 단가로서, 계약기간 동안 불변

#공수계약의 하도급대금 = “공수” × “계약단가”

예) 계약단가를 30,000원으로 가정하면, 특정한 작업 물량이 ‘10공수’로 산정될 경우의 하도급대금은 300,000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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