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세상구경]

[오피니언타임스=허영섭] 우리 인생길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 행렬에 비유할 수 있을까. 온갖 차량이 일정한 간격의 차선을 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모습은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비교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 국도나 한적한 시골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일단 도로에 올라서면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자동차나 인생에 있어서나 하나의 숙명이다. 운전대를 잡고도 눈길을 돌려 바깥 경치를 즐길 수 있느냐 하는 약간의 여유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한 해도 먼 길을 돌아왔다. 한눈을 팔지 않고 이정표를 따라오기만 했어도 수고를 한결 덜었으련만 사서 고생은 예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애초부터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내세우고도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게으름을 부린 탓이 작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다짐들도 새해가 시작돼 불과 몇 달이 지나는 사이 흐지부지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느덧 한 해를 마감하는 도로의 종착점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회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픽사베이

그러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망정 이만큼이라도 진행해 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도로를 주행하면서 거쳐 온 굽잇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점에서는 안도감이다. 구간에 따라 짙은 안개가 끼고 비바람이 불어 닥치기도 했다. 그런 코스들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다른 차량들보다 앞서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렇다고 크게 뒤처진 편도 아니다. 설사 약간 뒤처졌다 치더라도 우리네 삶이라는 게 주행 거리나 속도만으로 우열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잖는가.

더구나 지나온 도로의 대부분 구간에서 체증이 빚어지곤 했다. 제한속도가 100㎞를 넘어 110㎞나 120㎞까지 허용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꼬리를 물고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때는 추월선이라고 해도 대책이 없는 법이다. 옆 차선이 빨리 진행한다고 해서 차선을 바꿨으나 잘 빠져나가는 듯싶다가도 금방 막혀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히려 차선을 바꾸지 않은 것만 못할 때가 많다는 것도 경험으로 터득한 교훈이다. 눈치 빠른 얌체족들이 갓길을 드나들며 운전대를 돌리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이렇게 주행하는 도중 함께 출발했던 운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찌감치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다른 도로로 바꿔 탔는가 하면 다른 도로에서 합류해 온 운전자들이 옆 차선에서 달려가기도 한다. 훨씬 앞서가던 차들이 차츰 뒤로 처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도로에도 만남과 이별이 있고, 운전자들도 나름대로의 사연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도로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로가 바뀌고 차선과 동행이 바뀌면서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처럼 오가며 스쳐간 사람들과의 인연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엇인가 계기가 되어 만났을 텐데도 그냥 그것으로 그쳐버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며 지내던 사람들도 차츰 연락이 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 친구를 사귄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설사 차선을 옆에 두고 나란히 달려간다고 해도 웬만해선 피차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내기 어려운 게 요즘 세상사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인생길의 여건도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신호를 지킨다고 도로 흐름이 풀리지 않는 모습과 흡사하다. 때로는 접촉사고도 나고 공연히 시비가 붙기도 한다. 일부러 난폭운전을 일삼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에 따른 생활고를 겪으면서 감정들이 민감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녀들의 진학과 취직, 결혼 문제에서부터 자신들의 노후 대책에 이르기까지 골칫거리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아서는 주택 문제로 속을 끓이기 마련이다. 세월을 보내면서 펼쳐지는 인생사의 단면이다.

그러나 여러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기까지는 서로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안전운행에 최대한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안전띠를 매는 것도 필수적이다. 혹시 길이 막히는 경우에도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올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새해가 다가온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것도 없다. 도로는 또 다른 도로로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2019년의 마지막 며칠을 남겨 둔 시점에서 그동안 도로 규칙을 지키며 차선을 따라 열심히 지내 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음은 물론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현)
 세계바둑교류협회 회장
 전경련 근무
 뿌리깊은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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