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현의 사소한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양재현] 굉장히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린이용 위인전에 실린 이야기가 모두 역사적 사실인 줄 알았던 시절, 나는 위인전을 좋아하면서도 읽고 나면 늘 우울해지고는 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들은 나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너무 비범했다는 것.

세 살의 나이에 할아버지와 시를 지으며 놀았다는 율곡 이이부터 아버지가 건강을 염려해 책을 치우는 와중에도 끝끝내 한 권을 훔쳐내 읽고 또 읽었다는 세종대왕까지. 위인전의 도입부는 늘 그들이 나와 같은 일고여덟 살의 나이에 어떤 비범함을 뽐냈는지로 시작했다.

아마 그 책을 지은 저자는 위인의 비범한 일화를 아이들의 롤모델로 삼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나는 저자의 의도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갔다. ‘나는 이런 비범한 일화가 없으니 절대 위인이 못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정 반대의 위인전도 있었다.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은 아인슈타인이나 달걀을 부화시키겠다고 품었던 에디슨이 대표적인 주인공이었다.

한 때 꼴통이라 불렸던 사람들도 유명한 위인이 될 수 있으니 너희들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좇으라는 게 저자의 의도였겠지만 모르시는 말씀. 에디슨의 달걀 품기는 그 발상만으로도 엄청나게 비범한 것이다. 낙제? 엄마한테 혼날까봐 꾸역꾸역 공부하는 내 눈엔 그 낙제마저 용기 있고 멋있어보였다. 사회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을 뿐, 그들은 확실히 비범했다.

그런 내게 희망과 용기를 줬던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백범 김구선생이다. 솔직히 그 분이 뭘 하셨는지는 잘 몰랐다. 정치적 업적을 이해하기엔 많이 어린 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분의 위인전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일화 하나가 있었다. 아니 글쎄, 그 분이 어린 시절에 엿이 너무 먹고 싶어서 아버지의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과 바꿔먹었다는 것이다. 차마 숟가락 하나를 통으로 바꿀 담력은 없고, 그 와중에 아버지가 밥을 먹어야 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절반만 부러뜨린 것까지 완벽했다. 그것은 나 같은 아이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평범하고 찌질한 흑역사였다.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김구선생의 이런 일화는 나름 상당한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평범하고 찌질한 흑역사를 가진 사람도 위인이 될 수 있구나’라는 용기 말이다.

Ⓒ픽사베이

남의 흑역사에 위안을 받는 나, 정상인가요? 

바보 같으면서도 나름 귀여운 좌절을 했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좌절 중이다.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현실 때문이다. 여전히 내 삶은 평범하고, 위인전에 적힌 영웅서사와는 백만 광년은 동떨어져 있다.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우울해할 때, 뜻밖에 위안을 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솔직히 털어놓은 흑역사들이다. 수준 높고 통찰력 있는 글로 명망을 얻은 사람도 젊은 시절엔 회사 사장의 친구를 홍보해주기 위해 찌라시 같은 글을 써야 했고,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예술가도 개념 없는 상사의 횡포로 쓰레기나 다름없는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는 이야기들. 내가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도 한때는 무의미하고 쓰레기 같은 작업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남의 흑역사를 통해 위안을 얻게 되는 최고봉은 바로 연애다. 연인 앞에서 부끄러운 실수를 저질렀을 때, 혹은 되도 않는 말실수를 한 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자책하고 있을 때, 내게 용기를 주는 건 되도 않는 위로가 아니라, 남들이 SNS에, 혹은 인터넷 사이트에 수많은 “ㅋ”과 함께 늘어놓는 연애 흑역사였다. 읽다보면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엄청난 에피소드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들은 지금 즐겁고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타인의 흑역사를 통해 내가 얻는 위안의 실체는 이것이다. 다들 이런 흑역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이구나. 이런 흑역사를 거치고도 해피엔딩이 있구나. 나와 비슷한 흑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보니, 나 또한 그런 희망을 잃지 않아도 되는구나. 

찌질한 흑역사를 공유한다는 것

이런 흑역사의 공유가 넘쳐나는 곳이 있다. 사업, 연예, 다이어트다. 지금은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백수로 전전하던 시절의 이야기, 슈퍼스타가 한 때 알바로 겨우 먹고 살던 무명시절의 이야기, 탄탄한 몸을 가진 사람이 한 때는 초고도 비만이었다는 이야기.

이들이 가진 흑역사는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몇몇 이야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러한 흑역사를 딛고 성공했다. 이는 그 어떤 위대한 영웅서사보다도 더 피부에 와 닿는 성공스토리가 된다.

사람이란 상상한 만큼 이루게 된다. 이 상상의 한계를 넓혀주는 것이 바로 성공한 위인들, 롤모델이다. 우리는 누구나 위인이 되길 꿈꾸고 롤모델을 닮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상상을 이뤄가는 과정에는 개연성이 필요하다. 개연성이 없는 상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상상 사이의 넓은 간격을 메워줄 개연성.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흑역사’이다.

결국 찌질한 흑역사의 공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위인상의 표본을 넓히는 일이다. 영웅서사의 기승전결을 모두 갖춘 비범한 사람들 뿐 아니라 지루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위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위인의 서사가 다양화된다면 우리 사회가 상상할 수 있는 성공도 더욱 다양해진다. 거기에 더해져서, 나의 삶과 롤 모델로 삼았던 위인의 삶에 접점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은 그 어떤 행복회로보다 강력한 희망이 된다.

그러니 성공하신 여러분. 걱정 말고, 부끄러워 말고, 당신의 흑역사를 마음껏 공유해주세요. 당신의 흑역사가 누군가에겐 아주 큰 희망과 용기가 됩니다.

양재현

사소해 내놓지 못했던 시선.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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