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의 청년실격]

[청년칼럼=이주호] 떠날 때면 항상 다음 행선지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선 중학교를 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선 고등학교를 갔다. 한번 미스가 있긴 했다. 나는 대학을 한 번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재수를 했다. 어쨌건 재수의 다음 목적지는 분명했다. 적어도 삼수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이 순조롭진 않았다. 나는 경영학이라는 내 전공보다 문학에 더 기웃거렸다. 일 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이 년이 흐른 뒤엔 전역을 했다. 나는 곧바로 복학했다. 전공에 대한 내 불만은 더 심해졌다. 이번엔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렇게 해도 내 삶은 평범한 이십대라는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학연수에서 돌아왔고 다른 학교로 편입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공은 그대로였다. 동일계 전공이 편입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3학년을 마쳤고, 내게 주어진 4학년을 마쳤다. 아니 아직 안 마쳤다. 졸업시험이 남았다. 그러고 나면 정말로 대학생활을 마치게 된다.

Ⓒ픽사베이

떠날 때면 항상 다음 행선지가 있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그랬다면 나는 취업을 해서 회사라는 목적지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반기 공채에 전부 떨어졌다. 심지어 자소서 하나 패스한 곳 없었다. 삶에서 처음으로 내 다음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 나는 졸업이라는 방생을 당했다.

어쩌면 나만 방생을 당한 건지도 모르겠다. 준비를 잘 한 동기 몇몇은 이미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합격 소문과 축하 정도는 취업한 기업 크기와 비례한다.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친구 이야기는 멀리서도 들려오지만, 그저 그런 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매일 연락해도 모를 때도 있었다. 나는 소기업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삶에서 처음으로 다음 행선지를 못 찾았다.

한 때 대한민국에서 삶의 양식이 너무 구조화됐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적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가 복학해서 취업을 하고, 그리고 결혼을 하는 삶 말이다. 모두가 똑같이 사는 삶이 이상해 보였고, 나는 거기서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배부른 2학년이나 하는 불만이란 걸 알았다. 구조화된 삶에서 남 보기 평범해 보이는 만큼 살기 위해선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2학년 때 바라던 평범하지 못한 삶을 시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평범했다면, 이번에 취업을 했어야 하니깐.

시험의 결과와 상관없이 시험 끝나는 날은 항상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졸업 시험은 글쎄, 모르겠다. 시험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시험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불안하고 불안하다. 평범해지기 위해선 평범하게 살아선 안 되나 보다. 다음 해에는 뭔가 달라질까 모르겠다.

 

이주호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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