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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중기 덕분에 4만냥을 절약했소"다산 정약용의 삶과 사상-탄신 250주년 특별기획
김남기 | 승인 2012.03.15 16:41

   
 


이용후생을 내세운 실학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淸으로부터의 선진기술 도입을 역설했다. 茶山 역시 北學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에서 다른 실학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기술’을 보는 눈에 약간의 특색이 있다.

선생의 저술인 기예론(技藝論)에 의하면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또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더욱 정교하게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사기술이 발달하면 적은 땅에서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고, 방직 기술이 나아지면 적은 노력과 재료로 더 많은 실과 옷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 기술을 도입 습득함으로써 나라는 부해지고 군대는 강해지며, 백성은 풍요한 가운데 장수하게 된다고도 말하고 있다.

성공적인 기술 도입의 예로 일본과 유구[琉球:일본과 대만 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여러개의 섬]를 들고 있는데, 선생은 이수광의 <지봉집(芝峰集)>에 의거해서 근세 유구(琉球)가 중국으로 많은 자제들을 유학 보내며 십년씩 문물기능을 공부하게 함으로써 드디어 바다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중국과 기능을 겨루게 되었다고 단정하였다.
또 일본에서는 중국의 절강지방으로 왕래하고 백공기교(百工技巧)를 힘써 도입함으로써 백성은 풍족하고 군대는 강하게 되어 이웃나라의 침입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기술 도입의 생각을 가지고 茶山은 그의 이상국가론이라 할 수 있는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후생이용을 위한 관서를 따로 두어 북학의 방법을 정해 부국강병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목적으로 세우기를 건의한 이용감(利用監)은 공조(工曹) 소속으로 행정관리 이외에 연구원 4명을 두도록 되어 있다. 북학이 목표인 만큼 수리에 밝은 학자 2명을 관상감(觀象監)에서, 중국말에 능한 학자 2명을 사역원(司譯院)에서 선발하여 매년 북경에 보낸다.
 
그들은 자금을 두둑히 가지고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그 방법 또는 그 기계 등을 돈을 주고 사서 들여온다. 그들이 도입한 새 기술을 국내 학자 및 기술자들의 손으로 시험해 보아 그 결과가 성공적이면 그 공로에 따라 지방 목관(牧官) 등으로 발령해 주고 특히 공이 큰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보내주고 그 자손까지 등용한다면 10년 이내에 그 성과가 있으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국강병하여 다른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지금 국력이 약한데 구태여 별도의 관서를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바로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하루 속히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용감(利用監)의 설치가 급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같은 공조산하에 전함사(典艦司)를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뒤떨어진 조선술(造船術)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며, 아울러 옛부터 수운(水運)에 의존하여 수레가 없었는데 이로 인하여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물화도 유통되지 못하여 나라와 백성이 가난해졌다고 진단하고, 역시 공조산하에 전궤사(典軌司)라는 관청을 만들어 이곳에서 모든 수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값을 받고 나누어 주되 사사로이 만드는 것은 금해야 한다고 하면서 수레 만드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한 茶山은 형조산하에 양형사(量衡司)라는 기구를 두어 길이⋅무게⋅부피의 단위를 모두 10진법으로 통일하여 도량형의 기준을 엄히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술개혁에 이와 같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茶山이었기에 1789년 한강에 배다리(舟橋)를 만들 때, 그리고 수원성을 쌓을 때 여러 가지 기술적 자문에 응할 수 있었다.

1792년 겨울 부친상을 당해 여막에 거주하던 茶山에게 정조는 사람을 보내 화성(華城)을 쌓는 규제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했다. 茶山은 중국의 윤경(尹耕)이 지은 <보약(堡約)>과 유성룡의 <전수기의(戰守機宜)>를 참조하여 <성설(城設)>을 지어 올렸다.

정조는 정약용의 <성설>에 크게 만족했다 <성설>은 어제화성주략(御製華城籌略: 임금이 지은 화성 축성의 기본방안)이란 다른 제목으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그대로 실려 있는데 이는 정조가 茶山의 축성설계안을 전면 수용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성설>을 본 정조는 승정원에 "<기기도설(奇器圖說)>를 내려줘서 인중(引重)과 기중(起重)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하라”고 명했다.

<도서집성(圖書集成)>은 5천여권에 달하는 백과전서에 해당하는 책으로 궁중 비장 도서였는데, 그중 한권인 <기기도설>은 스위스인 선교사 겸 과학자인 요한네스 테렌츠[J. Terrenz, 중국명 둥옥함(鄧玉函)]가 지은 것으로서 서양 물리학의 기초개념과 도르래 원리를 이용한 각종 기계 장치가 그림과 함께 실려 있는 책이다. 정조는 이 책들을 보고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기는 인중기와 기중기를 설계하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茶山은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 기중기 설계도>을 작성해 올렸는데, 이 기중기는 큰 효과를 거두었다. 정조는 화성 축성이 끝난 후 “다행히 기중가(起重架)를 사용하여 4만 냥(兩)의 비용을 절약했다”고 기뻐할 정도였다. 이 역시 근대 실학정신의 개가였다.

뿐만 아니라 茶山은 빛의 굴절효과는 물론 볼록렌즈와 오목렌즈의 원리를 알고 있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고, 눈에 원시와 근시가 있는것도 눈동자의 렌즈작용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산문화교육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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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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