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청년칼럼=최미주] 잘못된 일에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는 친구를 만났다.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월급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괜찮은 자리 소개시켜줄게’라는 말이 나오려했으나 참았다. 아마 친구가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며 단순히 친구의 감정을 한 번 더 말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소 탄산을 싫어하는 친구는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예상대로 그녀는 자기가 처한 상황보다 ‘너 답답해. 그냥 그만두고 다른 데 가’하는 말이 더 고통스럽다 했다. 논리적으로 대응한 후 안 될 경우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친구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글쎄. 무언가 더 믿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비슷한 경험이 있다. 틈만 나면 상처 주는 친구로 스트레스 받을 때였다. 감정을 토로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냥 연락 끊어’라 답했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면 그런 사람은 과감히 끊어 내야 한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참았다. 상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많이 좋아했고,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상처를 준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무엇보다 상대와 관계가 끊길까봐 두려웠다. 현재 받는 상처보다 몇 배로 아플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픽사베이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울고 참을수록 상처를 주는 친구보다 내 자신이 더 미웠다. 이런 상황에서 칼같이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 생각보단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더 옥죄었다. ‘이럴 땐 이래야 한다’는 일반화된 논리가 참을 수 있는 사람을 미련하고 답답한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그렇게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언젠가는 상대를 차단 친구 목록에 넣을 수 있는 강한 내가 될 수 있기 바라며 차가워지고자 노력했다.

끝내 나는 상대를 차단 목록에 넣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따스한 만남을 중요시하며 누군가를 차단 목록에 넣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을. 닳을 만큼 닳았을까. 시간이 갈수록 동일한 사람의 같은 행동, 말로 받는 상처 강도가 약해졌다. 짓궂은 말을 들어도 ‘또 저러네~’하며 가볍게 넘기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기분 좋은 날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영향 받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보다 정이 더 많은 사람이구나’, ‘한 사람을 마음에 담으면 쉽게 비우지 않는구나’ 하는 것들을 깨달으며 내 속도에 맞춰 편안한 이별을 맞이했다. 덕분에 내 방식대로 나만의 인생 사전에 소중한 한 줄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친구에게 전했다. 지금 네가 당장 상사에게 따지거나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으며,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할 때, 혹은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헤어질 준비가 됐을 때 실행해도 늦지 않다고 말이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다. 2차를 가기 위해 고깃집을 나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친구는 불판에 마음의 짐을 다 버리고 온 기분이라 했다. 우린 삼겹살 먹은 뒤 선술집 가는 공식을 깨겠다며 곱창을 먹으러 가자 결정했다. 기름은 기름으로 채워야한다며 깔깔 웃었다.

세상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도대체 누가 만든 법칙인데 근원도 모르는 규칙들로 자신을 괴롭힐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나에게 효율성과 즐거움, 양과 질 중에 뭐가 중요한지, 현재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말이다. 무얼 선택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서 바뀌면 또 어떤가?

혹시 지금 ‘좀 그렇다’는 통설에 갇혀 답답해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 마음만 편하면 그게 정답!’이라고 말이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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