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청년칼럼=시언]  “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

“왜 싫어해요?"

“시끄럽다고. 나만 없으면 ‘에브리바디 해피’한데 자꾸 시끄럽게 한다고요.”

2017년 9월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 中

그는 스타였다. 그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러했다. 겨우 환자 하나 살리자고 ‘사망시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한 채 헬리콥터에 타는 ‘별종’ 의사였기 때문이고, 한쪽 눈이 실명해 갈때도 병상에 눕기보다 수술대에 섰기 때문이고, 중증환자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데 필요하다면 정치권과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유명 정치인 몇몇과 협의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자 ‘의사가 환자 안 보고 뭐하는 짓이냐’ ‘출마하려고 그러냐’  등등의 비아냥이 그의 등판에 내리꽂히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여론의 태풍 한가운데 있었으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이름은 이국종이었다.

Ⓒ픽사베이

그럼에도 그는 내게 칼처럼 냉철한 사람으로 보였다.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 누구 앞에서건 해야 할 쓴소리는 하고야 마는, 그의 성정은 환자의 환부를 개복해 들어가는 메스를 닮아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내 첫인상과 달리, 살과 뼈로 된 칼이었을 그는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나날이 문드러져 가는 자신과 외상센터의 속사정에 대해 ‘죽는 소리’를 나열했다. 자금도 인력도 태부족이다, 희망이 없다, 버텨봤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 등등이었다. 인턴 기자 시절, 그의 저서 『골든아워』에 관한 리뷰 기사를 자처할만큼 팬심을 자랑했던 나였지만 그가 ‘죽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게 사실이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계속해 주겠지. 그래도 이국종인데. 안일하게 기대했던 나였다.

그런 이국종이 정말 외상의료센터를 떠난다고 한다. 혹자들은 최근 불거져 나온 ‘아주대 의료원장 욕설 사건’의 여파라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그건 핵심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더 이상 자기 고집 때문에 동료들이 쓰러지고, 더러는 유산까지 하는 꼴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환자 누일 병상 하나 얻자고 매일같이 비굴하게 빌어야 하는 일상도 이골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부르짖어도 인력충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자기가 그동안 잘못 산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조금만 더 힘써 달라, 이제 한국의 외상의료는 어떻게 되는거냐... 그를 응원해온 무수한 시민 중 누구도 그의 사직서를 반려하지 못했다. 이것은 자격의 문제였고, 그에게 더 이상의 희생을 요구할 자격을 갖춘 이는 이 땅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국종의 사의 표명이 얼마나 진심에 가까운지, 아주대병원 측이 그의 사직을 받아들일지, 이번 사태가 촉발되기까지 그의 잘못은 전혀 없는건지 아직으로선 미지수다. 국민적 영웅임과 동시에 의료계 내부의 눈엣가시였던 당신의 삶은 칼날 위를 걷듯 첨예해 보였고, 그 첨예한 대립각의 나날 속에서 당신인들 언제나 옳고 합당한 결정만 내릴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의 생 전체를 두고 공과 과를 적확히 가려내는 재주가 내겐 없다.

그러나 한번쯤은, 그에게 ‘고마웠고, 미안했습니다’라는 말을 건네야 한다고 숙제처럼 생각해 왔다. 환자 한명 살려보자고 기꺼이 핏물을 맞는 당신 같은 의료인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였다고, 당신이 탄다던 119 중앙구조단 헬기를 볼때마다 ‘한국은 답이 없다’며 덮어놓고 비난만 해대던 나를 부끄러워 했다고 말이다. 당신은 한국 외상의료 체계라는 환자를 살릴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겠다며 고집스레 수술대를 지켜왔다. 이제 환자를 살리는 건 남은 의료인들과 수술 참관인인 시민들의 몫이라는 말 역시 하고 싶었다. 이젠 우리 차례다. 거취가 어떻게 결정되든 앞으로 당신의 나날들은 태풍의 눈처럼 평온하기를 기원한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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