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세상구경]

[논객칼럼=허영섭]  미래학 분야에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앨빈 토플러가 한때 알루미늄 공장 용접공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두 살 나이에 공업도시인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로 옮겨가 얻은 생애 첫 직업이다. 결혼을 한 것도 이때였다. 물론 그의 의도가 용접공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작업장의 경험을 소설로 써 보겠다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틈 날 때마다 글을 썼으나 문학적 능력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네 해 만에 용접공 일을 접고 말았다.

하지만 그 직후 펜실베이니아에서 발행되는 노동조합 신문에 들어가 기자가 되었으니, 기술자로서의 경험이 기사 작성에 적잖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시 5년이 지난 다음 포춘 잡지로 옮겨가서도 노동 분야 칼럼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는 정황이다. 노동 현장의 체험을 통해 ‘예비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나 신문기자로서는 그 덕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이 그 밑천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미 네 해 전에 타계한 토플러의 얘기를 떠올리는 것은 어느 유튜브 채널의 스타 수학강사가 용접공을 비하했다는 최근의 논란 때문이다. 방송 도중 “수능시험 7등급이 나오면 용접을 배워서 호주로 가야 한다”고 실언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따라서 수학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발언으로 물의가 빚어지자 뒤늦게 공개 사과했다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픽사베이

그렇다고 발언의 당사자 혼자만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다. 두둔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공장에서 기름때 묻히며 일하는 기술자들을 낮춰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워낙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도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차라리 기술이나 배우는 게 좋겠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풍조다. 농사나 장사 일을 배우라는 얘기도 들었다. 공부에서 뒤떨어질 경우 어렵게 살 수밖에 없다는 꾸중이었다. 그런 사회적인 인식이 강의 도중에 여과없이 불쑥 튀어나왔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용접공이라고 해서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직업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의 토플러가 손을 댔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숙련도에 따라서는 남 부럽지 않게 보수를 받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호주의 어느 용접공이 유튜브로 공개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루 10시간씩 주 닷새 일할 경우의 연봉이 우리 돈으로 대략 6700만원에 이른다. 여기서 소득세(30%)를 제하면 실제 수입은 4700만원으로 줄어들게 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빈들빈들 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더구나 급변하는 사회 추세에 따라 직업적인 수요도 변하고 있다. 서너 해 전 영국에서 건설경기가 되살아나면서 벽돌공에 대한 인기가 갑자기 높아졌던 게 하나의 사례다. 심지어 포르투갈 벽돌공들을 170만원 이상의 주급을 지불하면서까지 고용했을 정도다. 비슷한 무렵 호주에서도 주택 건설이 늘어남에 따라 쌓아올린 벽돌 개수에 따라 일당을 계산했을 만큼 벽돌공에 대한 수요가 치솟기도 했다. 호주 정부가 2011년 벽돌공을 기술 이민자 직업군에서 제외시켰다가 3년 만에 다시 포함시킨 것도 마찬가지 배경에서다. 문제의 발언에서처럼 호주를 결코 변방의 나라로 바라볼 수는 없다.

미국 뉴욕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가 배관공 직업을 추천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 기준으로 뉴욕시 소속 배관공의 연봉이 초과근무 수당까지 합쳐서 2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2억원이 훨씬 넘는 수준이니, 세계적 부호로 꼽히는 억만장자의 입장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추천했을 만하다. 더구나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학에 들어갈 경우 연간 5000만원 안팎의 학비가 들어가야 하지만 일찌감치 배관공 직업을 택한다면 그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추가 계산이 나온다.

우리 경우에도 환경 미화원이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벌써 10여년 전부터의 얘기다. 요즘 기준으로 초임 연봉이 휴일 근무수당이나 명절 휴가비 등을 합쳐서 4000만원이 넘는다는 것이니, 지자체들의 모집공고가 날 때마다 눈길을 끄는 높은 경쟁률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변호사가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는 얘기에서도 돌아가는 세태를 느끼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직종으로 간주되는 변호사지만 그중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도 있을 테고, 말단 공무원 직급이라 해도 그만큼 인기가 높아졌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토플러의 생전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입시에 매달리는 우리 청소년들을 바라보던 측은한 눈길이 느껴진다. “한국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15시간씩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충격(Future shock)’과 ‘제3의 물결(The Third Wave)’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던 그의 경험적 토대가 용접공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일류 대학에 들어간다고 반드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듯이 용접공이 된다고 해서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말해준다.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현)
 세계바둑교류협회 회장
 전경련 근무
 뿌리깊은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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