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23]

[논객칼럼=최하늘] 나이 듦의 특권은 자유로움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에 매임이 없으면 자유롭다 할 것이다. 나 역시 은퇴 후 그런 삶을 기대했다. 내 안의 욕망을 줄여가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나이 예순셋에 은퇴를 선언하고, 3년이 흘렀다. 은퇴는 일반적으로 ‘주된 일을 떠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강도높은 충격이다. 미리 준비한 것은 없었지만, 은퇴 후의 삶에 그런대로 잘 적응해 왔다.

그런데 요즘 평화롭고 고요하던 마음에 잡음이 인다. 무기력감이 몰려온다. 모든 게 시들하다. 삶의 무게가 슬프다. 쌓아놓은 덜 굳은 시멘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슬럼프라고 하던데, 작금의 내 마음 상태가 그렇다.

Ⓒ픽사베이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도 이따금 찾아와 나를 괴롭히던 현상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금 또 그렇다. 원인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어디서 비롯됐건 그대로 두기에는 해악이 너무 크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불가피하다.

나를 괴롭히는 이 괴물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먼저 나의 내면을 진단한다. 내 안에 수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본다. 다시 심플해져야 한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부드럽게 풀어주어야 한다.

부드러운 게 강한 것이다. 특히 마음은 그렇다. 살면서 절감하는 진리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조금씩 굳어져 왔나 보다. 그것은 내 마음이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단순함을 잃으니 부드러움도 함께 상실한 것이다.

단순함과 부드러움이 사라지면서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슬럼프에 빠지게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내가 추구해 온 마음의 단순함과 부드러움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내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내 마음속 기쁨과 평화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 불평과 불만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가만히 셈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감사해야 할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결핍을 느끼는 한 두 가지에 정신을 뺏겨, 그 많은 축복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내 마음의 갈망에서도 이상징후가 포착된다. 내 꿈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지만, 쉽게 답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 인생을 완성할 꿈을 찾고 싶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걸어가길 원한다. 이 갈망은 욕망이 아닌 소망이다.

헤르메스 김이 쓴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에서 주인공 아리는 진짜 꿈을 찾는 방법을 이렇게 알려준다.

“당신도 만일 당신의 진정한 소망을 알고 싶다면 이 방법을 써보시오. 당신이 머지않아 죽게 되었다고 생각해보란 말이오. 그러면 당신도 모르고 있는 당신의 진정한 소망이 드러날 거요. 내 생각에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소”

이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가 권유한 ‘본래적 자기’ 찾는 방법이다. 책 속 주인공은 이 방법으로 자신의 진정한 소망과 부질없는 욕망을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소에 간절히 원했지만 얼마 후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곧바로 사라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욕망이오. 돈, 여자, 권력 등이 그렇소. 하지만 소망은 다르오. 머지않아 죽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소망이오”

소망은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있다. 그것은 삶에 의미를 더하는 일이다. 삶에서 이루어야 할 작은 소망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이 시즌에 내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연초 신문사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비슷한 얘기를 했나 보다. 한 후배가 “갑자기 슬퍼 진다”고 했다. ‘인생의 종말’을 얘기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이 온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죽음에 대한 나의 인식은, 소망을 알게 하고 모든 것에 소중함을 더해준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겪는 시행착오도 슬럼프의 한 원인이다. 당초에 기대가 너무 컸다. 은퇴와 함께 자유, 평화, 안락, 여유, 즐거움 등 좋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한가함이 주는 여유는 자칫 사람을 무력감에 빠트릴 수도 있다.

은퇴 후 삶도 인생의 한 단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은퇴했다고 발을 지구에서 떼고 사는 것은 아니다. 주눅들 것도 없지만, 장미 빗으로 물들 일도 아니었다. 다만 삶이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을 뿐이다. 가치관의 재정립이 요구된다.

은퇴 후 삶은 생존과 의미, 그리고 재미가 3개의 축을 이룬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들 모두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의미와 재미는 내가 조절하거나 선택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생존은 얘기가 다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이들 중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지가 은퇴 후 삶의 질을 좌우한다. 생존에 대한 압박감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면 훨씬 자유로운 삶이 될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은퇴자들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72세가 돼야 완전히 은퇴한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요즘 내가 앓는 병의 증상과 원인이 대략 파악됐다. 치유를 위한 처방전을 쓴다. 먼저 나의 영혼을 조율한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평상심을 되찾는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린다. 작은 것에 충실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삶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

이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더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진실을 보지 못하고

마치 삶이 편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하는 것처럼 불평한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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