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평소에 운명론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삶의 모양새가 이미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각자 태어난 나라와 지역사회, 집안배경과 부모형제 등 태어나기 전에 결정되어진 일들에 대해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더욱 중요한 환경적인 영향력은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주어진다. 태교를 포함해서 부모가 자식에게 알게 모르게 미치는 교육적인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마음상태에서부터 몸가짐, 그리고 의사소통기술과 구체적인 교육내용을 통해서 어린아이의 의식과 무의식세계가 형성된다. 특히 6–7살 즈음까지의 성장과정에서 어린아이의 무의식세계에는 아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공부하는 정보들이 계속 차곡차곡 저장된다. 그 정보들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평생에 걸친 인간발달과 행동에 어마어마하게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간 삶의 질은 결국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사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행동은 의식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자신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사고의 패턴과 습관적인 선택에 좌우된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을 보고 자라면서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과정에서 형성하는 무의식세계야말로 운명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지어지는 내부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커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행동이 습관화되어 좋고 나쁜 버릇은 평생에 걸쳐 반사적으로 반복되고 이런 무의식적인 패턴이 개인 삶의 질을 좌우한다.

어릴 때부터 누구나 외부에서 받게 되는 온갖 영향력의 심각성에 관련하여 인간의식 발달단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자나 뇌 과학자들의 연구논문을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실증과학적인 연구결과에 관심이 없다 해도, 한국 사람이라면 흔히 듣게 되는 지혜로운 교훈 가운데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픽사베이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이 하는 습관적인 행동이나 말, 그리고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미묘한 감정 상태까지 지극히 자연스럽게 물마시듯 흡수하며 자라난다. 아이들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른들로부터 오는 영향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그 운명적으로 타고난 환경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장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어른세계의 좋지 않은 특징과 해로운 점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의식적으로 방어막을 치고 살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이나 알코올 중독같은 파괴적인 행동이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사례를 접할 때 (유전적인 영향력을 포함하여) 외부환경에서 오는 무시하지 못할 운명적인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더군다나 현대인들은 가정환경 너머 사회문화적인 환경으로부터 오는 세뇌적인 영향력에 저항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위험에 놓여 있다. SNS시대의 소통기술발달로 인해 ‘긴밀한 인간관계’라는 말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가 아닌 가상적인 관계망이 더욱 촘촘해진 반면에 좋은 말이나 모범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웃지 못 할 현대판 비극적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도시에서 혼자 살면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환경요소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온갖 미디어로 전달되는 말이나 글, 특히 스마트폰으로 전파되는 상업적인 광고와 정보, 유혹적인 게임 등에 노출되어 있다. 누구나 별 생각 없이 외부의 자극에 충동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물량보다 더 많은 것들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세력은 온갖 미디어를 동원하여 소비자들의 의식세계를 마치 쓰레기통처럼 가득 채운다. 경쟁적인 소비를 자극하는 이런 물질현상에 압도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현대판 운명론을 펼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필자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돈이나 시간의 일상적인 소비와 관련되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모두 하나같이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현대과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운명이나 카르마라는 말은 각자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세계에 담고 다니는 기억이라는 정보연계망을 의미한다. 온갖 기억들이 저장된 뇌 속의 정보연계망을 흔들어서 뇌신경회로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운명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지금까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자신의 무의식세계를 이루고 있는 자기패배적인 정보를 의식적으로 바꿈으로써 소위 말하는 자기의 팔자나 운명을 보다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창의성으로 바꿀 수 있다.

첨단 뇌신경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이 5%에 달하는 의식적인 정보를 사용한다면 95%에 달하는 무의식적인 정보의 영향권에 놓여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사고패턴을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바꾸는 것은 마치 작은 몸집을 한 다윗이 거대 장수인 골리앗에 대항하는 것과 같다. 이미 승패가 정해진 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성경이야기를 믿는다면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무의식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다윗이 아주 슬기롭게 사용했던 의식의 조약돌을 평소에 매끈하게 갈고 닦음으로 해서 인간 삶을 억누르는 덩치 크고 멍청한 골리앗과 같은 부정적인 무의식의 힘을 제압할 수 있다면 독자들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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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들어오는 주의환경이나 정보의 질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 외부자극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 소중한 선택권을 행사하려면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찰나같이 지나치는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찰나와 같은 순간에 자발적으로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려면 우선 자신의 의식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에 관해 좋은 소식이 있다면 요즘은 유튜브 동영상을 활용하여 간단한 호흡연습이나 하루 5분 명상과 같은 자기수련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사용하여 자기 삶을 조화롭게 지휘하는 자기 인생의 주인역할을 하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법적인 성인나이에 못 미치는 성장과정에서도 외부로부터 주어진 상황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의지는 우리 내면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의식세계를 통찰하는 습관을 기르고 무의식세계를 좀 더 평온하게 가꾸어가는 실천을 통해서 어른이나 아이나 누구든 막론하고 내면 의식의 면역성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높은 의식으로 조화롭게 채색된 삶의 질을 온전하게 방어하고 유지하는 최상의 면역성은 내면의식세계에서 강화된다.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사는 현대인의 주요 특성들을 큰 틀에서 간단하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자발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남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비자발적인 인생의 길을 걷는 수용성으로 나뉜다. 자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과 주어진 삶의 길을 양순하게 따라가는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어떤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미래를 내다보자면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이 점점 더 기계처럼 작동하도록 강요하는 자동시스템이 한층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하는 옛말을 심사숙고해 볼 때가 되었다.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한국인 조상들은 마치 미래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더욱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그 위험천만하게 인공지능화된 세상을 미리 예측하고 경고한 것처럼 생각된다.

결국 자기 자신 밖의 환경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운명의 힘을 극복하려면 스스로 삶의 패턴을 새로이 창조해내는 자발적인 통제능력을 길러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외부환경적인 조건에 매순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기본적인 사리판단이 가능한 십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지를 지혜롭게 행사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키울 수 있다. 주어진 운명에 반하여 미래를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의식세계를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풍부하다는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좀비 같은 상태에 머물지 않고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살려면 우선 자신의 내면세계를 감지하는 기본능력이 필수적이다.필자는 명상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미 특정하게 패턴 지어진 무의식세계를 초월하여 자신의 내면을 다시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으로서 명상훈련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열혈부모들이 학령 전 자녀들을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유행(?)을 따라가는 반면에 미국 상류층 아이들은 어린나이에 명상을 배우는 추세로 가고 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인구의 25%가 명상이나 요가 등 자기계발법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시대에 살아남아야 할 미래세대가 더 이상 로봇처럼 수동적인 훈련을 받지 않게 하려면 자신의 의식세계를 자유의지대로 지휘하는 능력을 가능한 일찍 키워주어야 한다. 사람의 자식이 타의에 의해 뇌 속에 입력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만 의존하고 결정하는 기계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어른들이 앞장서서 자신의 운명을 창의적으로 개척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지원하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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