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작년 12월 12일 대법원이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과 관련,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의자인 30대 남성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남성의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1.333초의 추행’으로 불리기도 한 이 사건은 여성이 혼잡한 곰탕집 문간에서 피의 남성으로부터 엉덩이를 움켜잡혔다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3심 모두 피해 여성의 주장을 사실로 판단한 주된 근거는 여성의 주장에 일관성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피해 여성이 난생 처음 보는 남성을 상대로 자신이 창피를 당할지도 모르는 그런 주장을 할 이유가 따로 있겠냐는 것이다. 여기서 동원된 게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추행사건에서 원용된 이른바 ‘성인지감수성’ 논리다. 성문제에 관해서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마련인 여성을 남성보다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생처음 보기로는 피의자 남성도 피해자 여성과 매한가지다. 그가 처음 보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것도 아니고, 움켜쥐었다면 보통의 남성이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그가 유죄이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이 상습적 또는 병적 행동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부분이다. 그런 행동이 아니라면 접촉이 있었다 해도 가벼운 실수로 간주될 수도 있는 정황이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행위를 해온 사람이라면 어딘가에 나쁜 손버릇의 흔적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유일한 물증은 사고 순간이 찍힌 식당의 1.333초짜리 CCTV이다. 여기에는 남성이 여성의 곁을 스쳐 지나는 장면만 나오지 손이 여성의 엉덩이에 닿은 장면은 없다. 이 CCTV를 본 뒤 남성은 여성과 어깨를 부딪쳤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그는 경찰에서 여성과의 신체접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같은 신체접촉이라도 어깨를 부딪는 것과 엉덩이를 움켜쥐는 것은 이 사건에선 전혀 다른 것이다. 재판부가 그 것을 진술의 일관성 결여로 판단해, 유죄판결의 결정적 근거로 삼은 것은 과잉 해석이다.

재판부가 양자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했다고 하지만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남성에게는 충동조절장애 여부와, 여성에 대해서는 과민반응 여부에 대한 정신과적 진단이 필요치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남성의 손버릇에 대한 탐문조사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쳤어도 남성에게 유죄의 증거가 없다면 그 남성은 무죄로 봐야한다. 성인지감수성을 이 사건에 적용한 것은 그런 증거확보 노력을 소홀히 한 법원이 책임회피의 방편으로 이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지감수성 논리가 적용된 안 지사 사건은 여비서와의 수개월에 걸친 성관계에서 빚어진 것으로 위력에 의한 것이냐, 합의에 의한 것이냐를 놓고 서로 주장이 엇갈렸다. 1심 무죄, 2심 유죄로 판결도 정반대였다. 인과관계에 아무런 맥락이 없는 ‘1.333초 성추행’ 사건에 그런 애매하고 복잡한 논리를 적용한 것 자체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매스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성범죄 관련 사건이 보도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성인지감수성 과민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런 과민 반응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보다 성범죄를 자극하는 악순환에 빠져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다양한 성범죄 정보가 쏟아지면서 남성들 사이선 모방범죄가 조장되고, 여성들에겐 필요 이상으로 피해의식을 확산시킨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 이후 친지들 모임에서 이런 얘기들이 오갔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뒤에 서 있다가 하마터면 성추행범으로 몰릴 뻔했던 얘기인데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장면일 듯도 하다.

Ⓒ픽사베이

#1

*여성 : 사람 몸에 무엇을 대는 게예요?

*친구 : 내가 무엇을 댔다는 거요?

*여성 : 이상한 거 댔잖아요?

(순간 친구는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휴대폰을 떠올렸다)

*친구 : 내 몸에 이상한 건 이것뿐이요. 생사람을 잡지 말아요.

 

#2

*여성 : 어디를 만져요?

*친구 : 어디를 만졌다는 거요?

*여성 : 손으로 내 몸을 만졌잖아요?

*친구 : 손이 세 개 달린 사람을 봤소?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사람이 어디를 만졌다는 거요?

하기야 지하철에서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의 진동을 뒷사람의 성추행으로 오인해 뒤쪽을 쏘아보는 여성도 있고, 어머니가 출근하는 아들에게 지하철이나 버스에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라고 당부하는 세상이긴 하다.

신체의 특정 부위를 수 초 동안 응시하면 성추행이라는 것이 이른바 ‘시선강간’이다. 성추행의 판단 기준은 언행의 정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이다.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면 성추행으로 간주된다. 남성들은 상시적으로 성추행범이 될 위험 앞에 놓여 있다.

나의 두 친구는 다행히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정황이 있어 곤경을 면하고 여성으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고는 하나, 이 경우도 여성들이 법정으로 가서 일관되게 피해 주장을 한다면 그들 또한 죄인이 될 수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범행이 입증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평생 성추행범의 낙인을 받게 하는 법은 불공평하고 잔인하다. 대법 판결 후 남성의 아내는 “죽고 싶다”고 했다. 당사자인 남편의 경우는 더 말해 무얼 할까?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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