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고구려POWER 36]

[논객칼럼=김부복]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는 불후의 작품 ‘임꺽정’을 왜 쓰게 되었을까.

홍명희는 조선일보에 ‘임꺽정’을 연재하게 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생활이 좀 궁했어. 그런 상황에서 한 달에 생활비 조로 얼마씩을 주겠다고 하더군. 그렇지만 그냥 줄 수는 없다면서 생활비를 주는 대신,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글을 써달라고 요구한 거야. 그래서 임꺽정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지.”

불후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동기는 이랬다. ‘임꺽정’은 홍명희가 먹고살기 위해서 쓴 글이었다. 생활비가 아쉬워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 ‘임꺽정’이었다.

어쨌거나 ‘임꺽정’은 우리말의 보물창고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실수를 했다. 잘 알려진 ‘유명한 실수’다.

임꺽정이 백두산에 갔을 때 운총이라는 처녀의 어머니에게 무엇을 먹고사느냐고 물었다. 그 어머니의 대답은 “지금은 집 뒤에 화전을 일궈서 감자도 묻고, 강냉이도 심곤한다”였다.

감자@오피니언타임스

임꺽정은 운총이와 사냥을 나갔을 때에도 “해가 점심 때가 저문 뒤에 요깃거리로 가지고 왔던 찐 감자를 나눠먹었다”고 했다.

감자와 강냉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20년대였다. 강냉이인 옥수수는 임진왜란 때인 1590년대였다. 임꺽정이 붙잡혀서 참형 당한 것은 1562년이었다. 홍명희는 옥수수가 들어오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임꺽정에게 옥수수를 먹이고 있었다. 감자는 수백 년 전에 먹인 셈이 되었다. 아마도 실수였거나, 착각이었을 것이다.

이미 ‘활자’로 찍혀버렸으니 고치기도 껄끄러운 ‘오보’였다. ‘우리말의 보고(寶庫)’라고 일컬을 정도로 아름다운 홍명희의 글에 붙어 있는 ‘티’였다.

김성한(金聲翰)의 대하 역사소설 ‘요하(遼河)’는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의 침략군과 맞서 싸우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양성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우만 아바이’가 등장한다. 젊은이들이 존경하는 마을 어르신이다. 그 어르신에게 여주인공 ‘상아’가 소주를 따뜻하게 데워서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만 아바이는 따뜻한 소주를 마시며 얼어붙은 만주벌판의 추위를 녹인다. 그런 장면이 몇 차례나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소주를 마시게 된 것은 고려 후기부터였다. 소주는 원나라 때 도입된 것이다. 그런 소주를 김성한은 수백 년이나 앞당겨서 고구려 사람들에게 먹도록 했다. 역시 실수였거나, 착각이었을 것이다.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의 대하소설 ‘세종대왕’에도 소주 얘기가 나온다. 이성계의 아들인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가 날마다 소주를 퍼마시다가 죽는 것이다. 당시 소주는 오늘날과 달리 무척 독했다. 과음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안주가 좀 문제였다. 이방우가 소주를 퍼마시면서 먹은 안주는 ‘고추조림’ 한 가지뿐이라고 했다. 김성한의 또 다른 역사소설 ‘왕건(王建)’에서도 나중에 고려 혜종으로 등극하는 ‘무(武)’가 술을 마시면서 안주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고 있었다.

고추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조선 사람을 말살하려고 들여온 ‘신무기’였다. 고춧가루를 조선 군사들에게 뿌려서 쩔쩔매는 사이에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래서 고추의 이름도 왜에서 온 나물이라는 뜻으로 ‘왜개자(倭芥子)’라고 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고추가 있었다는 학설이 있기는 했다. ‘고쵸’라는 이름으로 왜란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학설이다.

그래도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다. 왜란 이전에 있었다고 해도, 콜럼버스 이후일 것이다. 그보다 빨리 도입되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진안대군과 고려 혜종은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에 있는 고추를 가져다가 술안주로 먹은 셈이다.

옥수수의 원산지도 아메리카다. 옥수수는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동그란 알맹이가 구슬처럼 빛난다고 해서 ‘옥(玉)’이 붙었다. 강남(江南)에서 온 것이라는 뜻으로 강냉이라고도 불렀다. 옥수수의 도입 시기 역시 아무리 빨라도 콜럼버스 이후일 수밖에 없다.

이 옥수수가 난데없이 사극 ‘선덕여왕’에 등장했었다. 탤런트 이문식이 ‘까마득한 미래의 음식’인 말린 옥수수 두 자루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사극이 아닐 수 없었다.

‘명절 연휴’ 때가 되면 방송은 경쟁적으로(?) 영화를 ‘재탕, 삼탕’하고 있다. 이번 설 연휴도 다르지 않았다. ‘재탕, 삼탕’을 넘어서 수십 차례나 재방영되는 영화도 있었다.

그 가운데 10년 전 영화 ‘신기전’이 있었다. ‘신기전’에는 신기전으로 적의 침략군을 글자 그대로 궤멸시키는 장쾌한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재방영을 해도 또 시청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신기전’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거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명나라 상인에게 ‘불꽃놀이용 신기전’을 팔아먹는 장면이다.

명나라 상인은 ‘불꽃놀이’를 보더니 질려버리고 만다. 가격을 은자에서 금자로 바꾸더니 60냥, 100냥, 150냥에 사겠다고 ‘호가’를 높인다.

그러자, 여주인공이 아쉬워하고 있다.

“금자 150냥이면 쌀 300‘가마니’인데, 그걸 왜 안 팔아요.”

하필이면 ‘가마니’였다. ‘가마니’는 일본말이다. 우리는 ‘가마니’가 아닌 ‘섬’이었다. 우리가 가마니에 곡식을 담은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였다. ‘가마니’라는 이름도 일본말 ‘가마스’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 ‘신기전’은 ‘가마니’를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가 세종대왕 시대에 등장시키고 있었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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