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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 대한 잣대, 그 한계에 대하여[윤유진의 청년의 눈]
윤유진 | 승인 2020.02.07 08:25

[청년칼럼=윤유진] 필자의 문패제목은 “청년의 눈”인데, 사실 필자가 가진 청년의 눈은 그리 넓고 깊지 않다. 심오한 주제를 탐구한다거나, 우주 원리에 관해 토론한다거나,  올드 팝, 혹은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거나 등등과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필자의 눈은 무엇을 향해 있는가? 칼럼니스트의 눈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24시간 중 꽤 오랜 시간 연예인을 향해 있다. 어떤 연예인이냐? 물으신다면 그것은 개인의 신상정보일 수 있기에 함구하겠지만, 그래도 최근 잘나가는 인기 아이돌이라는 것만 말해두겠다.

본 칼럼에서는 필자가 관심 있는 연예인의 이야기만이 아닌, 전반적인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를 할 것인데, 이 주제에 대한 칼럼을 쓰기로 한 마음가짐은 분노로부터 비롯됐다. 어떤 분노인고 하니,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그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불안증세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에서부터 온 분노였다. 물론 그 멤버가 활동을 중단한 것 자체에는 화가 나지 않는다. 다만, 매우 슬프고 안타깝게도 그 병명이 ‘불안 증세’라는 데에 화가 난 것이다. '누가 감히 내 자식과도 같은 소중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분노해야 할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 것이다. 소속 아티스트의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소속사의 잘못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불안 증세는 너무나도 개인의 심리 문제다. 아티스트 본인의 문제란 말인가? 심리의 문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화살이 돌아가야 할 대상은 불안 요소를 만들어낸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라는 사실에 이르자 필자의 분노는 또 다시 방향성을 잃고 말았다.

Ⓒ픽사베이

악플러들? 그들이 큰 문제지만 과연 그들이 오롯이 이 불안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매 순간 쉬지 않고 강요했던 나, 그리고 팬들 또한 한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본인은, 팬들은, 더 나아가 대중은, 좋아한다는 미명아래 연예인들에게 '어떠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건 아닌지...

‘연예인’, 음악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사회가 가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 우리는 연예인이라고 부르며 동시에 그들을 ‘공인’으로 취급한다.

공인은 사회의 규제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들도 다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는 필자가 공교육을 겪는 내내 자주 마주했던 토론 논제였다. 주된 논점은 연예인이 공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는 지일 것이다. 보통 한국사회는 그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의 생각은 ‘연예인이라면 응당 ~해야지’라는 잣대를 생산해낸다.

물론 사람은 사회가 가진 규칙과 법을 준수하며 살아야 하고,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면 더욱이 그래야 한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기부도 많이 하고, 선행도 많이 하며(그것이 보여주기 식일지라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올바른 잣대'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잣대가 변질되고 왜곡되는 현상을 요즘 많이 목도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연애”에 관한 잣대도 존재한다. 최근 유명 보이그룹 멤버의 결혼 선언이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던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연예인도 인간인데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둘째, “그의 결혼은 그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의 태도는 팬들에게 큰 상처였다. 팬으로서 가만히 있기 힘들다."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이 상황을 대입해 보았을 때, 양자의 감정 속에서 어떤 입장을 택할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팬으로서 살아온 사람들 중 다수가 필자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필자는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연예인의 ‘이미지’는 그 사람 ‘그 자체’가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해당 개인에게는 그 사람이 내세웠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속성 중 어느 것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가령 이런 것이다. 내 아이돌의 “남자친구(여자친구) 이미지”를 사랑하는 내가, 내 아이돌이 실제로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내 아이돌이 착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내가, 그 사람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 걸까?

가끔씩 ‘팬들을 기만했다’라는 표현을 마주치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들의 이미지와 현실의 모습 사이에서 오는 괴리 말이다. 요즈음 연예인들은 그 ‘기만’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특히나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몸을 기아 상태로 만들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고, 배고프고 힘들고 어지럽지만 매순간 웃으며 가혹한 스케줄을 소화해낸다. 유사 연애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애를 금지당하고, 핸드폰을 압수당한다. 비연예인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면서, 혹시 자신들의 행동이 조금이라도 ‘기만’일까 싶어 방송에서의 모든 행동, 말투 하나하나를 신경과민에 걸릴 정도로 유의한다. 이들을 보며, 과연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잣대가 옳기만 한 것인지도 고민해보게 된다.

얼마 전 연예계에서는 빛나던 두 별을 거의 한꺼번에 잃는 일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故구하라 씨와 故최진리 씨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TV를 보며 필자의 어머니는 필자가 꼭 그들처럼 당당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던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그렇게나 빛나고, 탑을 찍었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한순간이라서. 갑자기 열심히 하던 일들에 회의감이 들었다. 만약 이 동기부여의 하락이 그녀가 공인으로서 내게 남긴 효과라면,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히 아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부정적인 효과를 일으킨 ‘그녀의 죽음’을 양산한 것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 하던 ‘불특정 다수’이며,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모든 뒤틀린 손가락질을 외면하고, 왜곡된 잣대로부터 그녀를 지키지 못한 방관자인 ‘나’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업보’와도 같은 것이다. 나의 행동이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

필자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연예인들의 불안이 정확히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알 수 없다. 계속해서 논하고 있는 이 ‘잣대’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필자라고 해서 그들이 제공하는 이미지와 그들 자체를 완벽하게 분리하며 매번 선을 넘지 않는 잣대만을 들이밀 자신도 없다. 그렇지만 이 업계가 굉장히 기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칠 생각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이 있는 한 이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접속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조금은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 인(人) 자를 잘 살펴보자. 작대기 두 개가 서로 맞대고 있다.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이다. 연예인은 인기로 먹고사는 직업이니 반드시 대중이 필요하며, 동시에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대중도 연예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영향이라면 좋겠지만, 대중의 손에는 언제나 원하는 높이로 세울 수 있는 잣대와 익명 뒤에 숨어 그들을 물고 뜯을 수 있는 힘이 쥐어져 있다. 그러나 이 양날의 검을 사용할지 말지는 오롯이 대중 스스로의 몫이다. 앞에서 ‘업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다. 서로 의지하던 한쪽 작대기가 무너지면, 다른 한쪽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군에 속해 있다 하여 그러한 사실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연예인에 대해 어떤 잣대를 얼마만큼 세울지는 본인의 몫이지만, 세우기 전 항상 사람 인(人)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윤유진

정직한 눈으로 사회를 들여다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유진  yunyj24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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