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청년칼럼=하정훈]  아내가 어떤 기사를 공유해서 보내주었다. < 학교에서 ‘엘사’로 불린다는 딸, 그 뜻 알고 통곡했어요 >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우리가 그토록 예뻐하는 겨울왕국의 엘사로 불린다는데 아이는 왜 통곡을 하는지 의아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보았는데, 읽고 나서 속이 무척 답답해 옴을 느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엘사’ 였다. 집에서 통곡했다. 엘사는 LH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거참, 녀석들이 말을 그렇게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놀랍기도 했지만 바로 내 앞에 아이들이 있다면 유격 훈련을 바로 보내고 싶었다. 요즘 육아 커뮤니티에서 부모들이 LH에 살면 엘사, 빌라에 살면 빌거지, LH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살면 휴거지라고 애들끼리 놀린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있다. 또한 부모님이 월급을 200벌면 이백충, 300대면 삼백충, 500이상이면 금수저라고 아이들이 부른다고도 한다. 아내는 기사를 보고 “더 애낳기 싫어져”라고 말했다. 6세도 안된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너 집 전세야? 월세야?” 그런 걸 묻는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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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의 혐오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어릴 때도 분명히 아이들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 조금은 다른 방식과 이유로 왕따를 만들었고 공부를 못하는 친구, 못생긴 친구, 가난한 친구에 대한 다른 방식의 놀림이 있었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로 있었고, 요즘이라고 해서 예전과 다르게 놀림이나 차별이 더 커진 건 아니었다. 아이들의 사회에는 폭력과 권력과 차별이 계속해서 있었다. 아이들의 교실도 사회였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솔직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란 어렵다. 해결이 과연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아이들의 사회는 어른들이 끼어들지 않는 그들만의 시간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훈계교육만으로, 윤리 도덕 인성교육만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란 어려울 것이라 장담한다. 나 또한 지금은 부모가 아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를 둔다면 어떻게 아이를 교육할까 고민해보았다. 임대아파트 에 사는 엘사 아빠가 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당장에 답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중학교 때의 장면이었다. 반에서 싸움 2등이었고, 남자아이들을 힘으로 자주 괴롭히고 놀리고 했던 나쁜 놈이 있었다. 그리고 반에서 조용히 공부만 잘하고, 말 많이 없고, 운동 잘하고,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멋진 놈이 있었다. 나쁜 놈은 그날도 다름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괴롭힐 친구를 찾으러 다녔는데 그날은 멋진놈이 대상이었다. 그놈은 바로 멋진 놈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고, 조금씩 건들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분명히 당하고 있었을 텐데, 멋진 놈은 눈을 부라리며 반격을 했다. 대적을 했다. 반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싸움이 곧 일어날 것 같았다. 싸우게 되면 분명 멋진 놈은 나쁜 놈에게 엄청 얻어터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은 결코 나쁜 놈의 괴롭힘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학교 종이 쳤고, 나쁜 놈은 "뭐 이런새끼가 다 있어" 하고 물러났다. 이후로 그 나쁜 놈은 다른 애들은 괴롭히더라도 그 멋진 놈은 절대 건들지 않았다. 멋진 놈은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졌다. 

얼마 전 본 영화 ‘ 벌새 ’에서도 조금은 이 장면과 연결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친오빠에게 폭력을 자주 당하는 14살 은희에게 그의 멘토, 영지 선생님은 오빠가 폭력을 하게 되면 절대 가만 있지 말라고 말했다. 절대로. 자신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영지 선생님의 모습에 은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옴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성장이라고 부를만한 때였을 것이다.

불의에 저항한다는 건 아이들에게 분명 무서운 일일 것이다. 폭력 또한 아이들에겐 무척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식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결코 부당한 것들에 용납하지 말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할 것 같다. 용납하게 되면 이 부모 혀 깨물어 죽을 거라고 협박할 것이다. 그러한  불의에 자신을 허용하는 건 자신마저 자기를 놓아버리는 거라고 애써 말해주고 싶다.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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