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세상구경]

[논객칼럼=허영섭]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스쳐가기는 해도 낮에는 봄볕이 완연해지고 있다. 이미 입춘, 우수가 지난 절기의 순리다. 그러지 않아도 이번 겨울은 워낙 따뜻하게 지나갔다. 한강도 모처럼 겨우내 얼지 않은 채 계절의 끝자락을 보내는 중이다. 두어 차례의 기습 한파로 모래펄에 물이 고여 있는 가장자리만 잠시 얼어붙었을 정도라고 한다. 도심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북한산 기슭에도 봄기운이 슬며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던 희망의 봄날은 아니다. 아파트 화단의 볕바른 모퉁이를 따라 봄풀이 돋아나고 가로수 가지에 물오르는 기색이 뚜렷해도 가슴이 들뜰 만한 여유에 미치지 못한다.

봄은 왔건만...@논객사진

오히려 어딘지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하다. 단순한 계절의 시샘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시름에 잠겨 버렸다. 바다 건너 유입된 중국산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두근거리며 새봄을 맞던 소박한 행복조차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아카데미상에 취해 즐기던 짜파구리의 흥취도 시들해진 듯하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마다 마스크를 덮어쓰고 있는 희한한 광경이 지금 상황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과거 사스와 메르스 때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는 것으로 인사를 생략하라는 사회적인 권유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주앉아 대화하거나 식사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도 당분간은 자제 사항이다. 오죽하면 대학가 졸업식이 취소됨으로써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환호소리조차 꽃다발의 기념사진도 없이 그냥 묻혀 버리고 말았을까. 우리가 바라던 봄날이 이처럼 괴이한 모습일 수는 없다.

이런 북새통 속에 국회가 멈춰 선 데다 전국 법원의 재판까지 연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이러스 전염을 막는다고 오는 4월로 다가온 총선 선거운동까지 차질을 빚고 있으니,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지도 의문이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멈춰 선 듯한 분위기다. 속출하는 확진자들의 동선을 따라 백화점과 호텔, 극장, 식당 등이 차례로 휴점에 들어감으로써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가 죽을 쓰고 있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여기에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병원 감염이 발생하고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는 조짐까지 엿보이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에 한국까지 포함시켜 입국금지령을 내리고 있는 마당이다. 자국 국민들에게 한국 여행 자제령을 발동한 경우도 자꾸 늘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현지 공항에 내렸다가 한꺼번에 방역시설에 유치됐는가 하면, 신혼여행 커플들이 입국 퇴짜를 받고 그대로 귀국하는 경우까지 이어진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한국도 ‘코로나 위험국’으로 분류돼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반지하방에도 햇볕이 스며드는 봄날이 왔다고 해서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월이 수상쩍다고 해서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내자는 게 아니다. 그래도 초기 단계에서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였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가 코로나 방역의 모범국”이라며 서로 칭찬을 주고받던 윗분들께서 지금은 뭐라고 핑계를 돌려대는지 궁금할 뿐이다. 바이러스의 중간 확산처가 돼 버린 어느 종교집단에 책임을 돌리려는 듯한 조짐도 엿보인다. 해당 종교집단의 폐쇄적인 속성에 있어서는 책임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처음부터 중국에 대해 빗장을 걸지 못한 당국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가장 큰 잘못이다.

더구나 국민들의 청원도 빗발쳤다. 며칠 전 마감된 청와대 게시판의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에는 모두 76만명도 넘게 동의했다고 한다. 새 학기를 맞아 중국 유학생들이 수강신청 등록을 하려고 무더기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이 “제발 우리 자식들의 건강부터 먼저 생각해 달라”며 울부짖듯 하소연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 책임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국의 아픔이 우리 아픔”이라며 한술 더 뜨는 모습이다. 봄철마다 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먼지와 황사에도 아무 소리 못하면서 이번에도 다시금 허리를 굽힌 모습이다.

이러한 코로나 확산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우려를 더해준다.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올 여름철이 지나가도록 지속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들려온다. 그동안 수시로 발생했던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서 멀쩡한 가축들이 살처분 당하는 소식에 공연히 침울해졌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겠다고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코로나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스쳐간다.

그래도 봄날이다. 아무리 긴장되고 우울해도 살랑살랑 불어오기 시작하는 봄바람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며칠 뒤에는 남녘에서부터 산수유와 매화가 피어나고 그 뒤를 이어 개나리, 진달래의 꽃소식도 이어질 것이다. 비록 초·중·고교 개학이 전국적으로 늦춰졌을망정 꼬마 친구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모습도 그려진다. 바이러스가 떠돈다고 해서 새봄을 망칠 수는 없다. 지금 창밖에는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현)
 세계바둑교류협회 회장
 전경련 근무
 뿌리깊은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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