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인류의 진화역사와 관련하여 챨스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에 필요로 하는 경쟁적인 성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하면 185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은 적자생존의 이치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초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진화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회진화론은 경쟁사회의 처절한 구조 속에 내던져진 일반인들에게 대체로 세상은 오직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세계처럼 험악한 곳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킨 이론체계였다.

그런데 이런 상극적인 관점은 다윈이 후에 내놓은 중요한 학술적인 주장을 무시해 온 결과이므로 다윈의 진화론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다윈의 재발견, Rediscovering Darwin>이라는 새 타이틀로 2018년에 출판된 이 책의 내용은 인류 진화에 대해 훨씬 더 협력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다윈의 다른 책 <인간의 혈통과 성관련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은 1871년에 처음 출판되었는데 진화 심리학,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 등에 관련시켜 보다 긍정적인 세계관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보다는 1871년에 다윈이 내놓은 책을 중점적으로 그의 학설을 전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대해 보다 더 희망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진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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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평화적이고 타인 지향적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생적인 성향을 발휘해 왔다. 우리나라 말에 ‘아내’는 집안의 태양이란 뜻을 갖는데 그런 개념 자체가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이 발달시켜 온 한국문화적인 맥락에서 그냥 우연히 생긴 말은 아닌 듯하다. 동서양을 막론하여 여성들은 남성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 왔고 공동체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협동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맞설 만큼 저명한 저서인 <The chalice and the blade: our history, our future>로 유명한 라이언 아이슬러(Riane Eisler)는 여성성에 주목함으로써 인류에게 훨씬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관점을 역사적 사실로 조명한 바가 있다.

도덕적인 진보와 타인에 대한 더 큰 자비심에 힘입어 인류의식이 보다 상생적으로(win-win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면 인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주로 체력과 동물의 힘, 무력과 전술, 정보와 첨단기술력 등에 의존해 물질문명을 발달시켜 온 덕택에 현세를 사는 인류는 과거 조상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안락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인류가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정보에 의지하는 지적 능력(intellect)과 인간의 영악함이 만들어 놓은 환경파괴적인 기술력과 생산성에 의해 인류사회 전체가 자멸할 가능성도 극대화되었다. 문제를 만들어 놓은 의식수준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지혜(wisdom) 혹은 영성지능(spiritual intelligence)을 살려서, 이제 인간은 지구행성을 보전하고 그 안의 인간과 생명체들을 살리기 위해 남성적인 방법이 아닌 대안을 시급하게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이 적자생존의 논리로 경쟁적인 체제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핵폭발이나 기후변화에 의한 인류의 몰락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발달의 역사가 여성성에서 표출되는 자비심과 인내심, 그리고 포용력의 확장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필자는 영성적인 관점에서 볼 때 폭력이나 집단이기심 같은 인간의 파괴적인 특성을 정제시킴으로써 인류는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윈이나 아이슬러같은 저명한 학자의 의견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우리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아픈 사람을 간호하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슬픈 이를 위로하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해 온 엄마, 할머니, 고모, 이모, 그리고 이웃 아줌마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남을 배려하는 여성적인 능력이 여자들에게서만 발견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태석 신부님 같이 남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에너지를 한국 밖까지 널리 펼친 한국 남성들도 있고 생명을 살리려는 의지와 실천력을 발휘한 평범한 남성들은 더욱 더 많다. 살생을 멀리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서로를 보살피라는 가르침을 준 인류의 (남성)스승들은 이름 없이 봉사해 온 수많은 여성들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성성의 장점을 더 크게 살려서 남성성의 취약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여자만 여성성을 갖는 것이 아니고 남자만 남성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할 것은 여성은 여성성이 풍부한 남성을 선택하여 인간의 혈통을 유지함에 있어서 남성적인 특성내지 약점을 극복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미래사회의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공생적인 인간성을 사랑하는 여성성은 미래사회에서 더욱 더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성성이 갖는 많은 미덕들 가운데에서 이 짧은 글에서 필자는 기다림의 효용성에 대해 특히 강조하고 싶다. 서로 대치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소중한 바람들이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인류의식의 진화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인내하는 시간이다. 불만족, 불안감, 폭력성, 배제와 차별, 환경파괴 등 인간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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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자식의 성장을 눈물어린 정성으로 끝까지 기다려주는 펭귄부모와 인간부모가 있듯이 태양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햇빛을 선물해 주고 있다. 40억년이라는 물리적인 나이를 가진 지구행성은 150억년이란 오랜 시간의 역사를 가진 우주의 자식이다.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는 우리가 모든 다른 생명체와 동질적인 생명요소로 이루어진 하나됨(Oneness)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구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너지 앞에서 병든 사람, 병을 옮기는 사람, 치료받는 사람, 치유의 힘을 나누는 사람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서 함께 진화하고 있다.

기다림과 인내는 여성성 중에서도 가장 특출한 특징이다. 사실 조금만 천천히 하면 문제를 키우지 않고 잘 처리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결국 해결되고 극복될 수 있는, 인류가 지혜롭게 겪어내는 사건일 뿐이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한국인의 DNA을 탓해야 하나? 평소에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슬쩍 선을 넘어가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차 뒤에서 빵빵거리면서 소음까지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성급한 충동적인 기세에 떠밀리는 운전자들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결국 그 위험스럽고 불법적인 압력에 이기지 못하여 선을 넘고 마는 경우도 꽤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례를 두고 어둠의 그림자가 빛을 가리는 경우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큰 교통사고는 다른 사람의 안전을 배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교통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이 기본규칙을 지키는 않는 무책임한 버릇에서 출발한다. 안전벨트 착용법이 실행된 후로 교통사고 치사율이 줄어들었다는 고무적인 통계가 있다. 약간의 귀찮음과 성급함을 참아내는 좋은 습관이 가져 온 결과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부지런한 국민성 덕택에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인의 훌륭한 특성들 뒷면에는 일상생활 속의 조급함과 무책임한 성향 내지 안전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다. 선진국 수준의 물질적인 풍요를 성취한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 이제는 여성성 중심의 진화의 법칙과 기다림의 미덕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염병 사태로 인해 평정한 마음상태를 잃지 않기 위해 기다림과 인내의 미덕이 더욱 절실해졌다. 환자가 나을 때까지 간호하면서 기다려주고, 두려움이나 절망감을 스스로 극복하기를 서로가 기다려주어야 한다. 결국 어려움과 절망의 어두움을 삼키는 것은 지혜와 자비심으로 기다려주는 사랑에너지의 빛이다. 인류를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면역력은 인내심 깊은 사랑에너지를 발산하는 여성성이 충만한 평범한 여자와 남자들로부터 전파된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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