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잡설]

[논객칼럼=김부복]

백인들은 매독의 ‘기원’을 서인도제도라고 주장했다. 서인도제도의 원주민과 성 접촉을 하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우겼다.

매독의 ‘원조’가 서인도제도였다면, 그 지역의 주민들은 상당수가 매독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서인도제도에서 북미 대륙으로 병균을 옮겨온 백인들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매독에 감염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매독은 ‘야만인 병’이었다. ‘못된 병’은 모두 유색인종이 옮기는 것이었다. 백인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런 발상이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가득했다.

매독이 유럽을 휩쓸면서 백인들은 ‘매독 공포증’이라는 ‘신종 우울증’을 앓을 정도였다. 자신이 매독에 걸렸는지, 걸리지 않았는지조차 확인할 수도 없었다. 자신은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식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강박관념은 매독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마치 걸린 것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치료약이 마땅치 않을 때라 매독에 걸리면 수은을 먹고 고치려 하기도 했다. 수은을 두 주일 가량 먹고 나면 이가 흔들리고 침의 분비가 늘어났다. 잇몸이 검게 변하고 숨을 쉴 때 구리 냄새가 나기도 했다. 희한한 치료법이었다.

매독 공포증이 확산되면서 수건이나 침대, 컵, 담뱃대, 칫솔, 세면기, 연필, 악기, 잉크 등 모든 것을 통해서 매독에 감염될 수 있다고 무서워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성경책에 키스하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픽사베이

‘야만인 병’이 정말로 서인도제도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것을 백인 세계로 옮긴 책임은 전적으로 ‘남성’에게 있었다. 뱃사람들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뱃사람들이 서인도제도에서 매독에 걸렸고, 그것을 ‘여성’에게 옮겼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희생양’은 여성이어야 했다. ‘우월한 남성’은 여성을 ‘병균 덩어리’로 취급하게 되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1864년 어떤 여성이 군인에게 성병을 옮겼다고 고발당하면, 그 여성을 의학적으로 검사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1866년에는 그 법을 강화했다. 치안판사가 매춘부를 정기적으로 검사할 수 있도록 했다. '매독에 걸렸다'는 의사의 증명서가 있는 여성은 3개월까지 병원에 강제로 유치할 수 있도록 했다.

1869년에는 법을 더욱 강화했다. 치안판사 앞에서 ‘저 여자가 매춘부“라고 선서만 해도 그 여성을 강제로 검진할 수 있도록 했다. 필요할 경우 9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신사의 나라‘에서 비신사적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남성들의 행패는 1886년이 되어서야 사라질 수 있었다. 그것도 ‘전국부인연합’이 똘똘 뭉쳐서 강력하게 투쟁한 결과였다.

남성들의 행패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처녀와 거시기하는 것이 마지막 치료법”이라는 ‘해법’이 나돌았다. 매독에 걸렸거나, 걸린 것 같아서 찜찜한 남성들은 너도나도 처녀를 찾았다.

그 바람에 수많은 처녀들이 당해야 했다. 강제로 납치해서 병을 고치려 들기도 했다. 순진한 시골처녀를 속여서 제물로 삼기도 했다. 숫처녀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시쳇말로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처녀들의 ‘몸값’이 아닌 ‘처녀값’도 껑충 치솟았다. 매춘부의 몇 갑절이나 되었다.

가난한 여성은 돈을 위해서 스스로 나서기도 했다. 어떤 여성은 처녀성을 잃고 나서 매춘부로 ‘신장개업(?)’하기도 했다.

‘피해자’인 백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엉뚱한 작전을 펴고 있었다. 매독 공포증으로 떨면서도, 아메리카에서는 ‘원시적인 세균전’을 노골적으로 편 것이다.

백인들은 원주민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희한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기들에게 저항하던 원주민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픽픽 쓰러지는 것이다. 마치 원주민은 ‘백인의 냄새만 맡아도’ 죽어버리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병 때문이었다. 그들은 원주민에게 병을 옮기고 있었다. 원주민은 천연두에 걸리고 결핵균에 감염되고 말라리아를 앓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백인에게는 면역이 된 병이었지만, 원주민에게는 겪어본 적 없던 치명적인 ‘괴질’이었던 것이다.

원주민이 병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백인들은 효과적인 말살 방법을 개발했다. ‘위대하고 탁월한 지휘관’이라고 찬양받은 어떤 지도자는 협상을 하자며 원주민에게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꼼수’였다. 그 ‘우호적’인 선물은 천연두 환자가 덮었던 담요였다. 그 담요는 원주민을 더욱 효과적으로 쓰러뜨리고 있었다.

백인들은 덕분에 ‘총알’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병으로 쓰러지는 원주민이 ‘총질’로 사망하는 숫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훗날, 백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망한 원주민의 숫자가 ‘1억’에 달했다며 만행을 ‘반성’하기도 했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서양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뒤져본 ‘과거사’다. 주먹질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 19의 발생지는 ‘중국’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한 폐렴’이다. 그렇더라도 ‘아시아 포비아’의 밑바탕에는 다른 것도 깔려 있는 듯했다. 백인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라는 질병 우월의식이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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