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24]

[논객칼럼=최하늘]

대학 1학년 시절. 교양과목으로 ‘철학 개론’을 듣게 됐다. 너무 오래돼 교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수업시간 중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교수는 ‘행복공식’이라며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행복=성취/욕망

대학 때 배운 것 중 여태 기억되는 내용은 거의 없다. 공부를 소홀히 했던데다, 학부 전공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며 살아와서 그럴 것이다. 그 와중에 이 공식에 대한 기억 하나는 유독 선명하다. 그것이 지금 와서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의 변화로 이끈다. 내 안에 날아든 지 45년 만의 일이다.

변화 1

누가 나더러 60대 삶의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변화’를 들것이다. 요즘 절감한다. 불어닥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또 어떤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갈지가 이 시즌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이즈음 내가 마주하는 변화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외적 변화다. 싫건 좋건 나와 같은 세대 모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겪어 보니 그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 일하건 안 하건 ‘은퇴자’ 대열에 서 있다.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와 돕는 자로 남을 수 있다면 그나마 행운이다.

육체의 노화도 거스를 수 없다. 혈관에 쌓이는 지방을 쓸어내기 위해 날마다 한 움큼씩 약을 먹는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정류장까지 불과 몇십 미터 뛰었는데, 심장이 힘겨워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받아들여야 할 변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으니….

변화 2

또 하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구해야 할 변화다. 내면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 시즌에 내가 완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내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고 삶을 완성하는데 필연적이다.

픽사베이

내가 힘을 다해 구하는 변화는 내면의 성장과 성숙이다. 60대의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이자, 축복이다. 나 자신을 수없이 절망에 빠트려 온 모난 성격과 언행을 바꿔줄 것이다. 비로소 평생의 소원이 성취되고 있다.

철드는 나이가 됐다는 게 감사하다. 아직 말과 행동에 실수가 잦지만, 빈도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 나는 믿는다. 100살을 넘긴 노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는 “60이 되면 철이 든다”고 했다. 그는 “철이 드는 것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규정한다.

일련의 변화 중심에는 나의 신앙과 함께 행복공식이 자리한다. 욕망을 제어하지 않고 내 삶에 성장과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성경은 탐욕을 우상숭배라며 경계한다.

변화 3

행복은 세상 속이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외형적 성취가 주는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 못함을 경험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시선이 밖이 아닌, 안으로 향한다.

성취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성취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작은 성취라 해도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단지 무엇을 성취할지를 고민한다. 그것은 내 갈망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릴 적, 행복공식을 처음 접하고 가졌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성취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면 되는데, 성취를 늘리는 데는 나의 한계가 있으니 욕망을 줄이는 게 좋겠다!”

이제 거기에 수정을 가한다. 욕망을 뽑아내고, 그 자리를 소망으로 채워 넣길 기도한다.

이외수는 그의 책 ‘감성 사전’에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고,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망이라고 한다”고 썼다. 또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고,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행복공식을 넘어, 물처럼 흘러가길 소원한다. 낮아짐을 기뻐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를 때 에너지를 낸다. 낙차가 클수록 파워를 더한다.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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