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잡설]

[논객칼럼=김부복]

1993년 7월, 일본 요미우리신문 오사카 판에 기사 하나가 크게 보도되었다. ‘머리기사’였다. “만요(万葉) 사람들은 무궁화를 좋아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나라 시대 일본의 수도인 헤이죠오코에서 귀족들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피는 꽃인 무궁화를 관상용으로 재배했었다는 사실이 텐리 대학 학예원의 카네하라 마사아키 씨의 화분 분석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당시 무궁화는 일본에서는 자생하지 않았고 도래시기도 확실하지 않았으나 나라 시대에 이미 대륙으로부터 묘목을 수입해서 귀족들이 정원에 재배하고 이국의 정서를 즐긴 듯하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유적을 찾아서, 김달수 지음, 대원사 발행>

나라 시대면 8세기였다. 자생하지 않는 무궁화를 일부러 심어가면서 즐긴 귀족들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백제 사람들이 일본을 다스리면서 ‘우리 꽃’ 무궁화를 잊지 못하고 심었을 것이다.

픽사베이

어쨌거나 이 기사는 일본이 아득한 옛날부터 무궁화를 키우고 감상했다는 사실을 ‘머리기사’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지배층’인 귀족들이 재배했다고 했다.

그랬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자마자 무궁화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아이들에게는 무궁화를 똑바로 쳐다보면 눈동자가 꽃잎처럼 빨갛게 변한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눈병이 생긴다고 겁을 준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속은 아이들은 무궁화를 ‘눈에피나무’라며 피해 다녔다. 무궁화를 보면 눈에 핏발이 선다고 ‘눈에피’였다.

‘눈에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가짜뉴스’도 퍼뜨렸다. 무궁화나무 앞을 지날 때는 침을 3번씩 뱉어서 ‘액막이’를 해야 눈병을 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예 ‘더러운 나무’라며 침을 뱉도록 만든 것이다.

무궁화에는 비료를 뿌려줘도 안 된다고도 했다. 그 바람에 무궁화는 꽃을 제대로 피울 수 없었다. 잎과 줄기가 약해져서 진딧물이 끓게 되었다.

게다가 양지바른 곳에는 무궁화를 심지 못하게 했다. 햇볕이 잘 안 드는 뒷간이나 쓰레기통 근처에만 심도록 허용했다. 무궁화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야 했다.

반면, 자기들의 꽃인 벚꽃은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합병 이듬해인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제법 자란 1924년부터는 야간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밤 벚꽃놀이’는 이때부터 해를 거르지 않고 이루어졌다.

일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벚꽃을 심도록 했다. 관공서, 큰길가, 유원지 등에는 벚꽃이 넘쳤다. 관할관청에서 책임지고 가꾸도록 했다. 온 나라를 ‘사쿠라 천지’로 만들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잘 알려진 염상섭(廉想涉․1897∼1963)은 속이 뒤틀렸던지 이런 글을 썼다.

“… 요사이 조선에서도 벚꽃놀이가 풍성풍성한 모양이다.… 조선색과 사꾸라색이 어울릴지 나는 명언(明言)할 수 없다.… 벚꽃은 조선의 하늘같이 청명한 자연색에서는 제 빛을 제 빛대로 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유착한 기와집 용마름 위로나 오막살이 초가집 울타리 위로 벚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암만해도 ‘식민 사꾸라’라는 것이다….”

이런 저항심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늘어만 갔다. 일본의 ‘벚꽃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우리를 ‘벚꽃놀이’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1910년에 2만 그루를 심었던 것이라고 했다. 광복 후 일제 잔재를 없앤다고 거의 잘라버렸는데, 1962년 일본에서 묘목을 다시 도입해서 심고 있었다. 제주도가 벚나무의 원산지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기피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였다.

우리는 봄이 되면 ‘벚꽃 소식’을 접하고 있다. 언론은 벚꽃이 어디까지 ‘북상(北上)’했는지 중계(?)를 거르지 않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축제’가 죄다 취소되었는데도 중계한다. 제주도 3월 20일, 부산 22일, 대구 23일, 광주 27일, 대전 28일.… 서울의 벚꽃이 1922년 관측 이래 가장 빨리 개화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언론은 ‘마스크’를 쓴 채 벚꽃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도하고 있다. ‘코로나 벚꽃놀이’라고 부를 만했다.

언론은 그러면서도 ‘무궁화축제’는 ‘찬밥’이다. ‘단신기사’ 정도로 보도할 뿐이다.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작품 가운데 ‘꿈하늘(夢天)’이라는 글이 있다. 1916년에 쓴 소설이다. 거기에 ‘무궁화에 관한 노래’가 들어 있다.

“이 꽃이 무슨 꽃이냐/ 희어스름한 머리(白頭山)의 얼이요/ 불그스름한 고운 아침(朝鮮)의 빛이로다/ 이 꽃을 북돋우려면/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핏물만 뿌려주면/ 그 꽃이 잘 자라리/ 옛날 우리 전성할 때에/ 이 꽃을 구경하니 꽃송이 크기도 하더라/ 한 잎은 황해, 발해를 건너 대륙을 덮고/ 또 한 잎은 만주를 지나 우수리에 늘어졌더니/ 어이해 오늘날은/ 이 꽃이 이다지 야위었느냐/… 이 꽃이 어이해/ 오늘은 이 꼴이 되었느냐”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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