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청년칼럼=신명관]

주문을 받아온 누나가 짜증을 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야끼니꾸(‘야끼’는 굽는 것을, ‘니꾸’는 고기를 뜻하는 일본어. 다시 말해 고기구이다)를 손님이 주문하는데 뭐냐고 물었다는 거다.

단박에 귀찮은 진상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달랑 ‘야끼니꾸’라고만 메뉴판에 표기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옆에다가 메뉴에 대한 설명을 모두 집어넣은 상태였다. 고기 부위는 뭐고, 어떤 소스가 나오고,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까지.

고기가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는데 애매하다. 삽겹살 구이는 무슨 맛이 납니까. 삼겹살 구이 맛이 나지요. 고기를 별로 먹어본 적이 없는 애라면 그러려니 하겠다만, 손님은 아마 살면서 곱창까지 몇 번씩은 씹어보았을 중년층이었다. 소금이 무슨 맛이냐고 묻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이 정도의 손님이면 주문할 때만 귀찮지 직원을 괴롭히지는 않아 괜찮은 경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손님’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온갖 종류의 손님을 만나본 사람들이다.

1.반말충

혼자서 오거나 두 명 정도서 오는 손님 중 꼭 있다. 직원들끼리 이들에게는 ‘충’이라는 말을 붙이곤 했다.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만, 애초에 이 손님들은 매장에 정말로 해악을 끼치는 존재에 가까웠다. 되려 세명 이상이 되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건지 반말을 쓰는 손님을 찾기 힘들다.

매장에 와서 일단 서빙을 부르는 호칭은 ‘야’다. 벨도 잘 누르지 않는다. ‘주세요’가 아니라 ‘갖다 줘봐’가 나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릴 적 내 아버지가 슈퍼마켓을 할 때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창문을 열고 선 ‘야! 라면 한봉지만 줘봐!’라고 외친 어떤 아저씨였고, 또 하나는 내가 호프집을 할 때, 다짜고짜 단체석에 혼자 앉더니 ‘야, 닭좀 갖고 와봐~’라고 말한 아저씨였다. 둘 모두 ‘싫어! 나가!’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경우였다.

2. 불륜커플

술집이면 자주 보이고, 레스토랑이라도 가끔씩 보인다. 구석진 자리에 앉거나, 혹은 남자와 여자가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거나 나간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대화할 때 쓰는 호칭을 듣고 있으면 확신할 수 있다. 나이가 40대는 되어보이는데 서로 ‘자기야’를 쓰고 있다가, 전화가 울리면 받고 나서 “어 여보.” 라고 대답한다. 혹은 “OO엄마”, “OO아빠”가 나온다. 불륜 커플은 이미 캥기는 짓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테이블에서 나갈 때까지 보통 두 번 이상의 통화를 한다. 술집에서 일하다가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친구들이 가끔 생긴다. 서로 죽고 못살겠다는 듯 꽁냥거리다가도, 뻔뻔하게 파트너를 두고 배우자와 통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매장 직원을 괴롭히는 건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할 때가 있다.

픽사베이

3. 고상한 진상(?)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가끔씩 오는 경우에 발생한다. 진상이라고 하기에는 뭐하다. 악의적으로 그러시는 게 아니니까. 다만 그래도 난처하게 질문을 줄 때가 잦다. “그, 음식이랑 술 좀 줘봐요” 말투가 점잖아서 내가 다시 당황하고 말한다. “여기 메뉴판에서 골라주시겠어요?” 그럼 또 대답이 들려온다. “눈이 안좋아서. 맛있는 걸로 주세요” 고상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찬찬히 골라주다보면 다른 주문이 밀린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도 낼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주문을 도와드리고 나면 되려 효심이 올라올 때가 가끔 있다. 우리 할머니도 주문하실 때 힘드실까 하고.

4. 기억상실

이것도 두 명이서 올 때 가끔씩 벌어진다. 둘이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테이블에 앉아서 한 10분간 주문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뒤에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물어본다. “그런데 음식 언제 나와요?” 나는 얼이 빠진 표정이 들키질 않길 바라면서 말한다 “아직 안시키셨는데요…?” 새로 오픈을 한 집보다는 좀 된 음식점에서, 그리고 메뉴가 간단한 음식점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손님의 부류다. 안시켰단 사실을 알면 화들짝 놀래거나 멋쩍게 웃으면서 사과하고는 시킨다. 진상이라기보다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경우다.

5. 오열

가장 난처하다. 같이 온 일행도 달래지를 못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크고 오래 가면 은근히 손님이 빠져나간다.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으니까. 들어오려던 사람이 나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지만 뭔가 서러워서 펑펑 울고 있는 사람에게 가게 영업에 방해되니까 나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보통 직원들은 매장에서 술을 먹고 우는 사람을 굉장히 고깝게 볼 때가 잦다.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되려 술을 먹고 취하는 일이 적다. 그게 얼마나 진상인지를 아니까(다음날에도 근무해야 하니까)

6. 나 사장님이랑 아는 사인데 (할인요구)

저랑은 아는 사이 아니잖아요.

7. 저 이집 단골인데요 (할인요구)

제가 사장님이 아니라서 모르겠구요.

8. 서비스 맡겨놓은 사람

음식점에서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지만, 보통 음식점마다 서비스를 주는 기준을 암묵적으로 정해둘 때가 있다. 1인당 일정금액 이상을 먹었을 때라던가, 아니면 메뉴를 몇 개 이상을 시켰을 때라던가. 중국집은 주문한 메뉴가 3개 내지 4개를 넘어갈 때 군만두 서비스를 주는 곳이 많고, 술집은 (평균 가격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1인당 25000원이 넘어가면 서비스를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많이 시켜놓고 순식간에 먹고 사라지는 게 아닌 한 우리들은 포스기에 찍힌 테이블의 주문금액을 보고 서비스를 준비한다.

그래서 “우리 여기 지금 3시간째 앉아있는데, 뭐 없어요?”라고 물어봐봤자 소용없다. 한번은 8명이서 룸 하나를 4시간동안 차지했는데 6만원 어치를 시켜놓고 서비스가 있는지 물어본 경우 또한 있다. 미안하지만 없다. 이건 우리가 ‘싸가지 없는' 게 아니라, 당신들에게까지 주면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윙크나 나름대로 깜찍한 제스쳐를 취하면서 “우리만 쪼끔 챙겨주세요”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손님이 태반이라 안된다.

9. 이거 맛있어요?

평생 한 번도 물건을 팔아본 적이 없는 건가 의심하는 유형이다. 질문 들을 때마다 착잡하다. 어지간히 취미로 장사하지 않는 한 웬만큼 대중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파려는 게 음식점이다. 그리고 사장이라면 ‘아뇨 맛없어요’라고 말할 경우가 있긴 할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아뇨 별로 맛 없으니까 다른 거 드세요’라고 말한 곳이 있다면 보통은 두 가지다. 아르바이트생이거나, 만들기가 좀 복잡하고 귀찮은 음식이거나.

10. 흡연

매장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핀다. 진심으로 화들짝 놀라서 안된다고 말하면 ‘이미 불 붙였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동이로 물을 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손님한테 이래도 돼!?’라고 물으면 ‘이미 했는데 어쩌겠어요’를 대답할 기세로. 실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 흡연자는 10만원 정도만 벌금을 물겠지만, 음식점은 한 번에 1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누적되면 월 순수익을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할 정도로 벌금이 많아진다. 전자담배라고 괜찮다는 사람들도 가끔씩 있는데, 정말 안 된다. 집에서도 피우면 잔소리 듣는 담배를 낯선 사람들이 잔뜩 왔다가는 음식점에서 피우고 싶을까.

11. 성희롱

나는 해당이 없다. 애초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인지라 함부로 내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거나 스킨십을 하는 손님은 없다시피 한다. 하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여직원이 서빙으로 들어오면 말은 달라진다. 특히 중년 이상의 아저씨들이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날린다. 자기 손을 여직원 손에 올리고 ‘몇살이야?’, 혹은 대놓고 ‘너 이쁘다’, ‘남자친구 있어?’  심하면 정말로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까지 생긴다. 홀 매니저를 했을 때는 그런 진상의 부류가 있을 때 일부러 여자애에게 다른 걸 시키고 내가 대신 테이블로 나가서 막는 경우도 있었다만,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하거나 무서워서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직원들의 경우 피해가 상당히 크다. 그때 즈음엔 경찰이 최고다. 경찰을 부르는 경우에 갑자기 언성을 높이거나 되려 꼬리를 마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냥 무시하고 CCTV 녹화중임을 말한 뒤 부르면 된다. 세상 가장 더러운 유형이랄까.

픽사베이

12. 폭력

제일 위험하다. 음식점은 불과 날붙이, 끓는 기름이 있는 곳이다. 함박 스테이크나 고기 같은 걸 시킨다면 가위나 칼도 심심찮게 손님에게 나가고, 젓가락만으로도 충분한 흉기가 될 수 있다. 테이블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경우가 있어 머리를 부딪치면 바로 찢어진다. 싸움이 났을 때 경찰을 부른다고 하면 진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랑곳 않고 테이블을 엎어뜨리거나 사람을 넘어뜨리는 경우도 생긴다. 부탁인데 외적 갈등과 물리적 폭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매장 바깥에서 해주길.

직원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때가 있는데, 부디 정말로 해칠 자신도 없으면서 하지 말길 바란다. 명백한 직원 폭행이자 영업 방해이고, 형사처벌감이다. 우리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자기가 "손님이기에 ‘갑(甲)’이고 왕이니 너는 함부로 대하지 못하잖아~"라는 생각에 굉장히 거칠게 행동하는 손님들이 정말 가끔씩 있다.

미안하지만 불과 날붙이, 끓는 기름은 주방 사람이 가장 잘 다룬다. 그리고 주방은 보통 성격이 급하고 불같다. 정말로 수틀리면 그쪽이 위험하니까 제발 그러지 말자.

나는 당신이 먹을 걸 즐기러 온 손님이길 바란다. 우리는 손님을 받으니까.

 신명관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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