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이호준

#1 공양간에서

제가 머물고 있는 사찰 밥상 앞 대화의 주 메뉴 역시 ‘코로나19’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 없으니까요.

“우리 딸은 어제 월미도로 옮겼다네요.”

“영종도에 격리돼 있다고 안 했어요?”

“그랬는데 무슨 이유인지 옮기라고 해서….”

맞은 편에 앉은 공양주 보살의 사연입니다. 그녀의 딸은 국제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남미 볼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도 코로나 발병이 급증하면서 귀국했다고 합니다. 워낙 먼 곳이라 3일이나 걸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규정대로 가족 상봉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래도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웃습니다.

“그래, 숙소에서는 혼자 뭘 하며 지낸답니까?”

“하하! 할 일이 없으니까 핸드폰으로 하루 종일 ‘맛집’ 검색을 하고 있대요. 격리에서 풀리는 대로 뭐도 먹고 어디도 가고….”

공양주 보살에게는 또 하나의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군에 간 아들인데요. 지금이 휴가 기간인데 휴가는커녕 외출도 못 나온다고 한숨입니다. 늦게 얻은 외아들이라 유난히 걱정이 많습니다. 혈기 넘치는 군인들에게도 고난의 계절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명 걱정을 싸안고 있는 친구도 옆에 앉아 있습니다. 직업군인을 연인으로 둔 사무실 여직원인데요. 남자친구의 얼굴 본 지가 언젠지 모른다고 그리움 가득한 눈길로 부대 방향을 바라봅니다.

“심지어 택배도 못 보내요.”

챙겨주고 싶어도 챙길 수 없는 현실이 그녀를 더욱 답답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공양주 보살이든 사무실 직원이든, 아니면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든, 서민들은 비교적 의연하게 잘 견디고 있습니다. 모두 어려운 현실이지만 누굴 탓하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요즘 유난히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습니다.

#2 예식장에서

며칠 전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잠깐 고민했습니다. 예식장이 조금 멀기도 하고 전염병도 여전히 기승이니 축의금만 보낼까? 하지만 직접 가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저마저 안 가면 너무 쓸쓸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식장은 예상보다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열감지기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손소독제가 비치돼 있는 풍경이 좀 낯설었다고 할까요? 아! 그것 말고도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었군요. 모두 마스크를 쓰는 바람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알아보기가 영 어려웠다는 점도 그중 하나입니다. 인사를 할 때는 마스크를 잠깐 내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또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는 인사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았습니다.

혼주는 전염병 속에서도 찾아온 친구들에게 영 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뒤로 미룰까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는 말이 고정된 인사였습니다. 다들 괜찮다며 격려했지만, 바닥에 깔린 불안감은 감추지 못했습니다. 축의금만 전달하고 곧바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말은 다른 일정 때문에 바빠서 그런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을 얼른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는 풍경도 조금 달랐습니다. 전 같으면 여럿이 모여앉아 술잔을 돌리며 왁자지껄 했을 텐데, 두 셋씩 떨어져 앉아서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전처럼 2차 모임을 갖자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였습니다.

#3 약사불 앞에서

30~40대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약사여래대불 앞에 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경건한 표정이었습니다. 부부는 기도가 끝나자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누나로 보이는 아이는 예닐곱? 그리고 동생인 남자 아이는 네댓 살쯤 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절을 했습니다. 여러 번 해본 듯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지나가다 말고 그 귀여운 모습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부처님께 소원을 말해야지?”

엄마의 말에 큰 아이가 얼른 소원을 외쳤습니다.

“부처님! 우리 아빠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돈’이란 말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작은 아이도 옆에서 어눌한 목소리로 한 마디 보탰습니다.

“부처님!! 마스크 안 쓰게 해주세요.”

아! 그 소망에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안에 갇혀있거나 밖에 나오면 꼬박꼬박 마스크를 써야 하니 얼마나 갑갑할까요. 그러니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게 가장 간절한 소원일 수밖에요.

저도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세상 사람들의 아픈 몸과 아픈 마음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부처님께 간절하게 부탁드렸습니다.

“부처님! 저 아이의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 전염병에 신음하는 세상을 구해 주세요.”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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