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청년칼럼=허승화]

인류의 첫 경험

2020년대를 맞이한 인류에게 첫 재앙이 닥쳤다. 무엇에 대해 쓸까, 이번처럼 고민 안 해본 것은 처음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외에는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놓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류에게는 늘 환상이 있었다. 재난도 영화 속 환상에 가까웠다. 영화관에서, 공항에서, 여행지에서, 환상은 사고 팔렸다. 전세계는 지구촌이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류의 믿음은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깨 준 환상이다. 세계가 서로를 향해 열었던 문들은 닫혔다. 사람으로 북적이던 영화관과 공항이 텅텅 빈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환상을 한 꺼풀 벗겨내자 환상이었으면 싶은 현실이 펼쳐졌다.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도 모자란 미국에서는 의료진이 보호 장비없이 신생아를 받는데도 대통령은 자기 PR에만 관심이 있다. 락 다운에 따르는 소요 사태를 두려워한 시민이 총과 탄환을 구입하며, 대형마트 매대가 텅텅 비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다.

신기하고 어이없는 새로운 일상 속에서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돌리는 시민들의 선행, 격리로 인해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자들의 기행 등 새 일상의 물결이 SNS 상에 넘쳐난다.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달라진 일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즐기는 듯, 적어도 잘 견디고 있는 듯 보인다.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 끝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19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맥 드라이브 스루'. @사진 맥도날드 매장/오피니언타임스

영화의 미래

이 시국에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상상뿐이니, 공상을 해보려 한다. 바로 이 시국에 가장 직격타를 맞은 업종에 대한 전망이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코로나19 이후의 영화 업계에게 닥칠 미래다. 코로나19의 충격파를 가장 많이 받은 업종 중 하나인 영화 업계에 예전과 같은 영광의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한국영화 100년의 쾌거’라는 말을 즐겨했다. 그렇다. 2019년은 1919년에 시작된 한국 영화의 역사 속에 100년째 해였다. 그토록 기념비적인 2019년까지 영화관은 분명히 호황이었다. 하지만 2019년으로부터 불과 4개월이 지난 지금, 영화관들은 그야말로 관처럼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영화관을 무슨 바이러스 배양접시 보듯 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개봉을 미루다가 아예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한 영화부터, 영화관과 OTT 동시 개봉을 예정해둔 영화, 개봉을 무기한 보류한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보통 영화의 투자, 배급사들은 1년 치 영화의 개봉 일정을 잡아놓는다고 한다. 각 영화마다 적합한 개봉 시기가 따로 있기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일정을 잡는 것이다. 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개봉 시기라고 할 만큼 개봉일은 영화 산업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상반기 개봉예정이던 영화 대부분이 개봉을 미뤘다. 이미 제작 중이던 영화가 제작을 중단한 사례도 많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개봉을 미룬 영화는 쌓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 영화들에 투자했지만 공개하지 못한 투자, 제작사들은 추후 영화 제작과 투자를 미룰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준비하던 창작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사태가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 영화 자체를 포기하는 창작자가 늘어날 수도 있을 만큼, 코로나19는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창작자보다 더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대상은 영화관이다.

영화관의 미래에 대해 '가능성 높은 답안지'는 영화관용 영화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용 영화가 지금보다 더 뚜렷하게 구분되어 제작되고, 점점 영화관용 영화의 수가 적어지며 영화관이 프리미엄화 되어가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무사히 우리 곁을 떠나고 우리가 원래의 일상을 되찾는다고 해도 영화관은 종전의 호황보다는 못한 상황을 맞이 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변화를 상당히 빨리 받아들이는 나라이므로 한국에서의 변화는 그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다. 한국은, 외국에서는 아직 필름 작업이 주류일 때 가장 먼저 디지털에 정착한 나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코로나 그 후

모두들 이 사태가 얼른 종식되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만약 그러한 가정 자체가 틀렸다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 앞에 닥친 새로운 일상은 앞으로 올 미래의 시발점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바뀐 일상이 우리의 새 일상이 되고 우리는 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려 할까?

인류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하므로 생각보다 무탈하게 적응을 끝마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마스크가 없는 일상'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더 적어질 무렵에는, 2020년 이전의 과거를 황금기로 여기며 그리워할 수도 있다. 이 상상이 코로나-19가 만든 환상이기를 바란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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