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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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을 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불세출의 명작보다 앞서 나왔던 작품이다.
“스스로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번호는 누구나 단일제국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관해 논문, 서사시, 선언문, 송시 및 그 밖의 다른 작문을 쓸 의무가 있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우리들> 中
때는 29세기.
‘모든 번호’라는 말을 다시 읽어보자.
개인은 없다. 누구든 번호화되어 ‘등록’된다.
“나, D-503은 인쩨그랄의 조선 담당 기사이다. 나는 그저 단일제국의 수학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우리들> 中
D-503은 ‘단일제국’에 복무하는 많고 많은 번호 중 하나에 불과하다. D-503이라는 일련번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부품에 가깝다.
“한 시간 후면 사랑스러운 O가 올 것이다. 나는 기분 좋고 유용하게 흥분된 스스로를 느꼈다. 집에 오다가 서둘러 사무실로 가 당직원에게 장밋빛 감찰을 건네주고 커튼 사용권에 대한 허가증을 받았다. 이 권리는 단지 섹스 날을 위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우리들> 中
관리가 극에 달한 상황, 살풍경 그 자체다.
내밀한 사랑까지 단일국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커튼 사용권이 ‘단일국가’에 있는 상황에서 번호들은 섹스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된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다. 다른 모든 번호가 그렇듯이 - 아니면 우리 중의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나는 각오가 되어 있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우리들> 中
모든 것이 감시되고, 통제된다.
그것이 질서고, 규칙이다. 반드시 따라야 한다. ‘다른 모든 번호가 그렇듯이.’
나는,
그리고 당신은 몇 번으로 호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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