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논객칼럼=안희진]

I.

과거 매관매직이나 계파정치, 정치적 논공행상 흥정물이나 다름없던 <전국구>와는 의미와 성격이 다르다고 하지만, 현행 <비례대표제> 뿌리와 실상이 전국구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당의 공천으로 선출된 비례대표를 통해 소외된 계층을 비롯한 현장의 욕구와 소망을 수렴하여 대변하는 한편, 제도개선과 정책수립 등 정책수단을 동원하게 하는 효율적인 정치제도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정당이 과연 그럴만한 사람을 잘 골라냈는지, 뽑힌 후 그들의 행보가 과연 그러한가 하는 점이다.

나같은 소시민으로선 국회의원처럼 매력적인 직업이 없다. 헌법적 지위와 권위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 등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금 속물스럽게 말한다면, 국무위원들을 불러내서 ‘이보시오. 장관! 아는가 모르는가!!’  호통을 대체 누가 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면책특권을 방패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으니 '신나는 권력' 아닌가. 세비(歲費)야 일한만큼 받는다 쳐도 국가예산으로 수명의 보좌진까지 거느리게 되니 이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혀' 존경은 받지 않더라도 선호하는 직업으로 국회의원들을 꿈꾸는 분들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이번 총선 만해도 수 천명이 여의도 주변에서 ‘나를 뽑지 않으면 국가와 민족의 큰 손해요, 反역사’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제발 뽑아달라’며 썩은 동아줄이라도 선만 닿으면 달려가 닭똥냄새가 나도록 박박 빌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이 ‘맛’을 본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마르고 닳도록 여의도에 계속 남길 원하지 않겠는가.

국회의사당 전경@오피니언타임스

II.

국회의원으로서의 본질은 다르지 않지만, 직능대표로서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은 일반지역구 의원과는 다르다. 조직이나 자금을 포함한 정치력 등 정치적 위상이나 배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특정하고도 분명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직능대표에게 원하는 정치적 상징성과 정치적 역할, 기능이 일반 지역구의원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역량, 표현방식과 조직, 네트워킹, 정치행보는 지역구 일반 국회의원과는 사뭇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일반 국회의원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뭐 나쁜 건 아니다. 흉내 내는 동안에 자신의 기능과 역할로서의 정체성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역시 사정은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 폼만 잡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직능대표의 특별한 역할과 기능이 아닌, 보통 국회의원 노릇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직능대표의 정체성은 정당 배경보다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자신을 국회로 보낸 <현장>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일>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사람>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아픔>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현장의 <욕구와 소망>을 떠나면 안된다.

III.

그런데 많은 비례대표들이 일반 국회의원들과 입법활동, 정당에서의 계파활동, 후일을 포석한 나름의 캠페인 등을 하다 보면...자연스럽게 <현장>을 떠나게 되고, <일>을 떠나게 되고, <사람>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인 현장 <아픔>을 잊게 되고, <욕구와 소망> 역시 잊게 된다. 직능대표로서의 비례대표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보통 국회의원> 노릇만 하다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성적표’를 들이대며 ‘이렇게 열심히 한 나를 또 뽑아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하는데, 총선철에 나타나는 정체성 상실의 이 모습들이야말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비례대표는 재선이 안된다거나 지역구 출마가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 문제는 다른 주제가 될 뿐, 지금 내말의 본질도 아니고 핵심도 아니다. 요컨대 지역구로 내보낼 국회의원 감이 없어서 당신을 직능대표로 보충한 게 아니란 말이다. 당신은 분명하고도 확실한 임무가 있고, 기능과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일반 국회의원들이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제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의 압승으로 총선이 끝났다. 낙선한 후보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 울분을 토하고, 당장이야 복잡한 마음으로 여의도 일대를 오가겠지만, 당신은 원래 당신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현장>에서의 일을, 필요한 <역할>을 가지고, 원래 국회에 가고자 했던 뜻을 살리며 <현장>속에서 살아달라는 것이다.

‘돌아갈 현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비례대표 후보자격이 애초에 없었고, 따라서 그를 공천한 정당은 심사나 검증을 잘못한 잘못된 정당이다.

<현장>으로 돌아가 진짜로 바쁜 나날을 <현장>과 함께 보내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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