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청년칼럼=방제일]

한때 인터넷 댓글을 수놓았던 말과 같이 이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일지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노무현 때문'이고, 이렇게 삐뚤어진 어른이 된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 내가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는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나는 이 소식을 경상북도 이름도 모를 산 아래 지휘 통제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들었다. 거짓말이길 바랐다.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앵커의 음울한 음성과 나와 교대하기 위해 온 다음 근무자의 감정 없는 눈빛이 나의 현실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이에게 미안함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노무현,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보아도 그리워지고 서글퍼지는 이름이다.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도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최근 그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나는 내가 왜 노무현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늘한 얼음 송곳이 내 가슴을 콕콕 찔러 댔다. 이내 나는 처음 부고를 들었을 때와 같이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모식 영상@ 사진 유튜브 캡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2002년 12월,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 광화문을 뒤덮은 노란 손수건을 TV를 통해서 봤다. 새벽 늦게까지 그 광경을 보면서 이상하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투표권도 없는 탄광촌의 미성년자가 정치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다니, 그건 어딘가 이상한 경험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TV를 보고 학교를 가니, 졸음과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그날 학교에서 오전 내내 잠을 잤다. 곤히 자는 나를 선생님들이 깨웠지만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이 단잠을, 이 꿈같은 일을 즐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5년’이라는 지난했던 노무현의 시간이 흘러간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멍청한 것인지, 내가 멍청한 것인지 나는 그토록 열광했던 광화문을 잊었다. 그저 성년이 됐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무현이 처절히 싸우는 동안 나는 삶에 취해 있었고, 술에 절어 있었다.

그렇게 새 시대의 첫째로 내게 기억됐던 남자는, 구 시대의 막내로 쓸쓸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 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다. 상관없었다. 정치 따위, 사회 따위가 어찌 되든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세상 만사가 모두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물어뜯기기만 하는 그까짓 자리, 개나 주라 그래.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치기 어린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시시했던 대학 생활을 접고 군대에 '끌려'갔다.

내가 마주한 군대는 결코 ‘시시’하지 않았다. 나는 이 ‘리얼’ 공간에서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단절된 공간 안에서 세상 밖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꾸준히 라디오를 들었고, 틈틈이 뉴스와 신문을 챙겨 봤다. 내가 있는 공간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반면 세상 밖은 노무현 때문에 더 시끄러웠다. 뉴스와 언론,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당시 열린우리당까지 모든 책임을 노무현 탓으로 돌려 됐다. 노무현은 그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퇴임 후 그저 필부로 돌아가 고향인 봉하 마을에 칩거했다. 그런 노무현도 싫었던지 사람들은 노무현과 그 가족들을 더욱 절벽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 유시민은 노무현에게 학벌 콤플렉스가 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노무현은 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수긍이었다. 유시민의 지적과도 같이 노무현에게는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콤플렉스라기보다는 꼬리표였을 것이다. 이 몹쓸 꼬리표가 평생 노무현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이 깊게 찍힌 낙인 때문에 노무현은 이명박이나, 보수언론에게는 절대 굴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죽는 것보다 싫었을지 모르겠다.

결국 노무현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무'로 돌렸다. 평생 '승부사'로 살았던 이가 바로 노무현이다. 그는 결국 능욕을 당하고 내쳐질 바에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숭고함을 지키려 승부수를 던졌다. 노무현의 선택이 옳은 건지, 그른 건인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다만 노무현답지 않은 선택이었고, 참 노무현스러운 결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치욕의 시간이었고 모욕적인 시간이었다. 긴 시간의 다리를 건너 우리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노무현의 유지를 이어 주길 바라는 모습과 더불어 노무현이, 그의 정신이 아직까지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노무현 덕분이다.

 방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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