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여자친구가 물었다. "오빠도 결혼하면 남의편 될 거야?"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었다. 서로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주자며 결혼을 약속했는데 남의 편이라니. 있어선 안 될 일 아닌가. 문제는 있어선 안 될, 그 일이 자연스레 내 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남의편'은 험난한 시월드 안에서 아내를 보호하지 못하고 시부모에게 휘둘리는 줏대 없는 남편을 뜻한다. 시월드는 옛말이라지만 형태를 달리해 여전히 번영하고 있는 현실 속 세계다. 20년 전 며느리가 생판 본 적도 없는 남의 할아버지에 증조할아버지에 고조할아버지 제삿상을 차리느라 꼭두새벽부터 초과근무수당도 못 받고 노동을 했다면, 이제 그 딸은 "내가 며느리 눈치 보느라 아들 집도 못 간다"라는 소릴 들으며 시댁 식구들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간다.

시친며(시어머니 친구 며느리)를 들먹이며 눈치를 주거나, 회사에서 근무 중인 며느리에게 '전화다오'라고 문자를 보내는 시부모의 이야기는 예사다.

@오피니언타임스

얼마 전 결혼한 내 친구는 첫 명절에 시댁식구들과 술을 마시다 취해 방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집안 어르신께 "설거지도 안 하고 들어갔더라? 이번엔 술마셨으니까 봐주는거야"라는 소릴 들었다. 시댁 식구들이 술을 좋아해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열심히 마셨는데, 칭찬은 커녕 무슨 죄라도 지은 양 꾸지람을 들어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다시말해, 착취적인 노동의 강도가 다소 약해졌을 뿐 며느리에게 가해지는 정서폭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살이가 타파해야 할 악습으로 여겨진 지는 제법 됐다. '시월드'라는 신조어의 등장 자체가 과거 당연시되던 며느리의 시부모 봉양이 갑을관계에 기초한 폭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방증 아닌가. 그 덕에 가해자를 가해자라 부를 수 있게 됐고, 가해자는 욕을 먹기 싫어서라도 언행을 조심하게 됐다.

그러나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시간적 지원 없이는 결혼생활과 육아를 이어가기 어려운 요즘, 당당하게 제 할 말을 하고 살 수 있는 며느리는 많지 않다. 딸 같은 며느리라며 딸에게는 시키지 않는 각종 봉사를 기대하는 시부모를 보며 며느리는 화를 눌러 담는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은 그걸 방관하는 남편, 그러니까 남의편을 볼 때다.

시부모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며느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사람이 아니라 시부모와의 관계 자체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부모님은 자기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시는데, 왜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냐"며 부모를 옹호한 적이 있다면, 당신 역시 갈 길이 멀다.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남자친구였을 수 있다. 다정하고 세심하며, 내 여자를 괴롭히는 온갖 적들과 맞서 싸우는 이상적인 남자였을 거다. 그러니 당신을 반려로 선택했겠지. 그러나 연애를 하며 터득했던 갈등해결의 솔루션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뻔한 소리지만, 결혼은 둘 만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내 부모가 선을 넘을 때 선 안으로 들어가시도록 밀어넣고, 내 부모 곁에서 아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 부모의 뾰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아내가 다치기 전에 그 앞에 몸을 디밀어야 한다.

일부러 나쁜 아들이 되라는 게 아니다. 내 아내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 알아야 한다는 거다. 사람이 아니라 관습과 문화 탓이다. 그래야 아내에게 끝모를 불안감 대신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이 생긴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직면할 수많은 역할기대, 그러니까 바람직한 아내노릇, 며느리노릇, 엄마노릇을 강요하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줄 수 있다.

지금까지 착한 아들로 살아왔다면, 우린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거나 피하려하지 말고, 갈등이 생긴 상황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게 '남의편'이 아닌 '남편'이 되기 위한 첫 단추다. 건투를 빈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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