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25]

[논객칼럼=최하늘]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 얘기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속 상관인 과장이 나를 불러 세우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당신은 직장생활 하기 힘들 것 같아”

그때는 그 말이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군을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후배가 “형은 나중에 직장생활 1주일도 못할 거야”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속으로 피식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40년 전 일이다.

그들 보기에 내 자아가 너무 강해서 그랬을 것이다. 자존심, 고집, 자기애, 자기의, 교만 같은 것들이었지 않나 싶다. 어떤 이는 그것은 좋게 포장해 카리스마가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죄악이었다. 내 인생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그러한 자아는 혈기와 독이 가득한 혀가 돼 밖으로 표출됐다. 그 폐해는 일상의 불편을 휠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옥 불에 의해 생의 두 바퀴가 불타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인연, 관계, 시간…. 모두 소중한 것들이다. 되돌릴 수 없어 아쉽고 슬프다.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다. 후회와 회한이 없을 수 없다.

@오피니언타임스

다시 살아볼래?

지난날을 후회하는 자신을 향해 엉뚱한 질문을 던져본다. 다시 이삼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옛날처럼 살지 않을 자신 있느냐고.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그런데 고개가 저어진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산다면 좀 나아지긴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중히 사양하련다. 그것이 어떠하든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인생길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 세월을 다시 살아내고 싶지는 않다.

나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을 걱정하는 시대에 산다.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내가 새로운 삶을 살 기회는 충분하다.

후반전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내 인생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내 인생 후반기는 전반기의 연장선이어서는 안된다. 전혀 다른 것이 돼야 한다.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 인생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 대해 남는 나의 아쉬움은 ‘더 많이, 더 높이, 더 멀리’ 성취하지 못한 데 있지 않다. 내면의 결핍에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소망을 갖는다. 이제 내 삶의 외형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을 바꾸는 데는 장애물이 없어 보인다.

내면을 바꾸려면?

이젠 바뀌어야 한다. 내면의 변화. 미룰 수 없는 인생 최대의 과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나의 변화를 바라며 기도한다. 내 안이 사랑으로 채워지길 간구한다. 관용하고 양순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나에게 오늘이 주어지는 것은 어제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신이 주시는 기회이고 은총일 터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물론 내면을 변화시킨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경험으로 그것을 안다. “쉽게 화내지 말자”고 수없이 결심하고 시도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이어리에 빨간 별표까지 쳐가며 굳은 의지로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쌓이는 별표가 해마다 수십 개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나를 볼 때마다 절망한다. 짙은 어둠과 벌이는 승산 없는 싸움 같다. 늘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의 의지력을 탓했다.

방향이 잘못돼 있었다. 내 무지의 산물이다. 내 감정과 행동을 다스리는 일을 내 의지에 전적으로 맡길 게 아니었다. 그래서 늘 실패했던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영적인 문제였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방법이 잘못됐던 것!

내 말과 행동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했다. 진리(영)로 마음(혼)을 새롭게 하면 감정이 변화된다. 감정이 바뀌면 의지가 변한다. 그러면 행동이 바뀌고 삶이 변화된다. 그러니 내 말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 의지력과 싸울 게 아니었다. 진리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 먼저였다.

쉽게 화내는 것을 다혈질 성격이 갖는 일반적 성향 내지는 나의 잘못된 습관 정도로 여긴 게 패착이었다. 그래서 내 의지로 이겨보려 했던 것이다. 참패가 예고된 싸움이었다. 그림자와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믿음, 진리)으로 혼(생각, 감정, 의지)과 육(행동)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며 산다. 그러면서 내 다이어리의 빨간색 별표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서히 진행되는 내면의 변화를 느낀다. 변화에 대한 자신감도 붙는다. 감사한 일이다.

나의 서드에이지는 인생이 익어가는 장하의 계절

@오피니언타임스

60세 이후 30년을 나의 서드에이지(third-age, 제3 연령기)라고 생각한다. 서드에이지는 내 인생을 완성하는 시기다. 성숙의 계절이다. 한의학에서는 그것을 ‘장하(長夏)의 계절’이라고 했다.

일찍이 100세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한의학에서는 한해를 다섯 계절로 나눈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장하(長夏)’를 둔다. 여름에 맺힌 열매가 익는 때다. 이 시기를 거치지 않으면 풋과일이 된다. 지금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계절이다.

나이 드는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은 자신을 익혀간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처럼 인생의 가치를 높여 줄 것이다. 또 내 곁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