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10여 년 전, 중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려 수십 번씩 팔을 굽혔다가 폈고, 소파 아래의 틈 사이로 발을 집어넣고 상체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체육 수행평가를 볼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열심히 했던지. 그냥 운동이 좋아서 했다. 그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고교 3년 동안에도 개인 운동을 꾸준히 지속했다. 어느새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20대 청년이 되었다. 군 입대를 눈앞에 두었다. 입대 전 체력 평가를 본단다. 평가 항목은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지난 6년 동안 잠들기 전에 해오던 운동이 평가 대상이란다. 평소와 같이 편안히 임했다. 힘들이지 않고 만점 기준 횟수를 채웠다.

픽사베이

체력 평가를 무난하게 치르고 입대에 성공했다. 그렇게 나의 청춘을 조국에 바쳤다. 한여름에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고, 한겨울에 추워서 벌벌 떨었던 그때 그 시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고된 훈련과 근무 탓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던 나날이었다. 특히,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전역 후 무엇을 하고 살지 확실하지 않아 막막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겨운 시간이었다. 어느새 사계절을 각각 두 번씩 겪은 뒤 전역했다.

20대 중반이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학과를 지원할까 살펴보다 북한, 안보 관련 전공에 눈길이 갔다. 생소한 학과인지라 궁금했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친구들에 비해 군필인 내가 전공 적합성 부분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당당히 지원했다.

면접을 치렀다. 신입생 치고 나이는 좀 있지만 군 복무 마치고 온 터라 허송세월한 것이 아닐뿐더러 전공 이해도도 타 새내기들에 비해 높을 것이라 어필했다. 교수님들께서 나를 좋게 보셨나보다. 최종 합격했다. 낮지 않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살아남았다. 내가 군필이 아니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힘들고 불안했던 군 복무가 나를 살렸다. 군대야 고맙다.

그렇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긴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전공과목은 매우 흥미로웠다. 깊이 파고들수록 새로웠다. 학업 외적으로도 추억이 얼마나 많던지. MT 가서 물놀이하고, 학교 축제 때 연예인의 멋진 공연도 보았다.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가 신명나게 라켓을 휘둘렀고 따스한 봄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한강에 돗자리 깔고 치킨을 시켜먹는 여유도 누렸다. 전국 대학생이 참여하는 대외활동도 해보았다. 많은 걸 느끼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군 복무 당시에는 이러한 삶을 상상이나 했던가.

돌이켜보면 10여 년 전 팔굽혀펴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저 운동이 좋아서 꾸준히 했을 뿐인데, 그 습관이 군 입대와 대학 진학을 연쇄적으로 가능케 했다. 그러고 보면 현재 나의 습관이 결국 스펙이 되는 것 같다. 팔굽혀펴기가 병적증명서를 발급했고, 병적증명서가 재학증명서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조만간 졸업증명서를 손에 쥐겠지. 그 다음은?

故 스티브 잡스가 언급했던 “connecting the dots”가 문득 떠올랐다. 잠들기 전 팔굽혀펴기가 6년 뒤 군 입대의 결정적인 열쇠가 될지(그때는 입대하기 전 체력 평가를 하는지 몰랐다), 21개월 군 복무가 대학 합격의 열쇠가 될지(전역 후 대학에 진학할지, 그 학과를 전공할지 예상 못했다), 대학 들어와서 이처럼 다양한 경험과 인연을 만날지 어찌 알았겠는가.

미래에 어떤 상황과 마주할지 모른 채 그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그 행위가 나중에 도움이 될 줄이야.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또 어떤 일이 눈앞에 펼쳐질지 모르겠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기대하고 있다. 기대감을 품고 오늘에 충실할 뿐이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는 무엇을 해볼까?

그래요,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 우리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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