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사실, 그리 달가운 외출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때 서울행이라니. 더구나 산 속에서 2년 넘게 살다보니 대도시에 간다는 게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한 요즘입니다. 하지만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석 달에 한 번씩은 현장에 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녁에는 옛 직장 선후배들과 약속도 있었습니다. 매달 열리는 모임인데, 두 번은 코로나19 때문에 모임 자체를 취소했고, 또 두 번은 제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멤버에서 쫓겨나기 전에 얼굴을 내밀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그동안 쓸 일이 없어서 비축해뒀던 마스크부터 챙겼습니다. 그것도 만약을 대비해서 두 장이나. 서울에서 40년 넘게 살았던 ‘베테랑’인데, 이제 와서 촌놈 소리를 듣기는 싫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건물에도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도 충분히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뭔가 모르게 비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집에 차를 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부터 도시의 ‘모험’이 시작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건 금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류장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 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산속에 사는 까닭에 마스크와 친숙할 틈이 없었던 제게는 외국에라도 떨어진 듯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화들짝 놀라 저도 마스크를 꺼내 썼습니다.

픽사베이

버스 안 풍경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더위로 늘어져 있는데, 마스크는 견고한 성처럼 승객들의 입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승차하다 운전기사와 실랑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툼 끝에 연행됐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은근히 관심이 가던 참이었습니다. 옷이나 신발처럼 마스크가 필수품으로 굳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로 갈아타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쓴 건 말할 것도 없고, 가능하면 서로 떨어져 앉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2020년 서울에는 ‘코로나 간격’이라는 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봐야 하는 빌딩 앞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문구에 또 깜짝 놀라서 잠깐 벗었던 마스크를 허겁지겁 썼습니다. 기어이 촌놈 짓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일이 끝난 뒤 바로 모임이 열리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몇 달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제게는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는 인사법이 여전히 낯설었지만, 촌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능숙한 듯 인사를 나눴습니다. 모처럼 나온 여성 선배가 그동안의 불출석을 변명 삼아 설명했습니다.

“외손자가 어리잖아요. 딸하고 따로 살기는 하지만 급할 때는 나한테 쫓아와서 맡기고 가니, 조심할 수밖에 없더라고. 혹시나 싶어서 무작정 집에만 있었어요. 그게 할머니 노릇이다 싶어서….”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이나 아이가 있는 집은 더욱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요. 더구나 그 선배는 가까운 친구를 코로나19로 잃었다고 합니다. 충격이 적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한 선배는 열이 좀 있는데, 혹시 모른다면서 불참했습니다.

몇몇 사람이 일찍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2차를 갔습니다. 산 속에서 지낸 뒤 늦게까지 술 마시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쯤에서 헤어지고 싶었지만, 그동안 못 나온 죄로 묵묵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가리 안주로 유명한 생맥주집 골목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 여긴 코로나 영향을 안 받나보네? 또 다른 나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이중성을 슬며시 엿보면서, 우리 일행도 취객들 속으로 섞여들었습니다. 다시 감염병 시대를 실감한 것은 주문을 하자마자 인적사항을 기록해달라고 ‘장부’ 같은 것을 내미는 순간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인적사항이라니…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2차에서도 코로나19는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의 소재는 ‘긴급재난지원금’이었습니다. 누구는 멀리 있는 가족 몫까지 200만원 이상 받았다고 하고, 누구는 쥐꼬리만큼 받았다고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쓰임새는 대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모처럼 가족들과 제대로 외식을 했다는 사람, 술을 실컷 마셔봤다는 사람, 이참에 안경을 맞췄다는 사람… 서민들 사는 모습이 대개 그렇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코로나19’라는 다리를 건너오는 길이었습니다. 늦은 밤인데도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취한 게 분명한 초로의 사내들도, 뭔가 위축된 듯한 외국인도,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의 갑옷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차내 방송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를 생활화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날마다 듣는 서울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제게는 외국어라도 듣는 것처럼 생경했습니다.

그렇게 어리바리했던 서울에서의 하루가 마감됐습니다. 저는 서울 속에서 하루 종일 이방인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SF영화 속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여름에 밤늦게까지 마스크를 쓰고 사는 서울사람들이 위대하다는 생각과 빨리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덤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역사는 2차 팬데믹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구의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궁금했습니다. 서울사람들에게는 일상에 불과한 이야기를 새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 역시, 기록에 한 줄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욕망 때문입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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