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논객칼럼=이영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한국에만 있는 현상으로 사교육과 부동산 간의 특이한 관계를 들 수 있다. 이 둘 간 에는 상관관계(correlation)과 인과관계(causation)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사교육의 질과 아파트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의미고, 후자는 사교육의 질이 아파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필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25년 간 거주해온 아파트를 처분하고 다른 곳에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학군과 사교육 환경이 여전히 아파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상당히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전세 보증금 인상과 상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대다수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경기둔화의 가능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는 현재뿐 아니라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사안으로서 애초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벌어졌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행될 때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되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과 이에 편승한 지식인들은 이 문제들에 대해 별다른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 사회를 분열시킨 비극의 시작이었다. 필자는 가끔 1970년대 초 강남개발이 추진되었을 때 정부가 분양 대신 임대 위주로 아파트 공급을 주도했다면 지금과 같은 부동산 투기나 불로소득으로 인한 위화감 등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은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므로 사교육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현재의 교육 풍토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잘못된 경쟁 개념에 중독되어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의의 경쟁이 대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쟁하다’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ompete’의 라틴어 어원이 ‘함께(com) 찾는다(petere)’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경쟁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이런 관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나 지식인 집단이 없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최근 정부는 또 한 차례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주무부처 장관은 이 대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반면, 세간의 반응은 정반대다. 그동안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검색해보니 이번이 현 정부가 출범한지 3년 1개월 동안 나온 21번 째 대책으로서 갭투자를 비롯해 투기 과열로 인한 아파트 가격 상승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고강도의 종합대책이라고 한다. 짧은 기간에 그토록 자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것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비정상적인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착잡한 심정이다.

@오피니언타임스 DB

정부가 이처럼 빈번하게 시장에 개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이 점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대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만성적인 고질병이기 때문에 선뜻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병이 깊고 오래되었다면 치유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주의 근본 원리가 대칭(symmetry)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 사교육 문제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근본 이유는 정부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 속전속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주무 부처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사교육비를 줄이려던 시도가 모두 실패했던 교훈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5공화국 시절에는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목에서 모든 과외를 금지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은 1920년대 미국에서 시행된 금주법을 연상시키는 조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 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알코올 소비량이 감소했지만 결국 원상 복귀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피아 조직이 발흥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술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무시한 법이기에 금주법은 성공할 수 없었듯이 과외를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 이후 과외금지령은 폐지되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대학입시제도를 변경해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시도는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모두 참담한 실패로 그치고 말았으니 사교육비가 더 늘어났다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교육을 억제하려했던 지금까지의 모든 교육정책들이 오히려 사교육비의 증가라는 역설적인 현실로 되돌아온 가장 큰 원인은 교육을 담당했던 관료들과 교육 전문가들의 문제 인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번 대학입시제도를 변경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이유는 목표와 수단을 반대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극성스러운 교육 열기를 감안할 때 일정 수준의 사교육비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기본 여건으로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의 기본 방향은 일정 규모의 사교육비 지출을 전제로 다양성과 창조성을 키우는 교육을 목표로 설정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사교육비 지출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사교육비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면 이미 경험했듯이 매우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첫째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둘째 문제를 정확하게 설정해야 하며, 셋째 진정 공익을 위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전문가들이 정책을 주도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동안 한국에서 실행되었던 부동산 정책은 이 가운데 어떤 기준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추진되어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참담한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지금은 그 동안 실행된 대책들이 효과가 없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의 의도가 좋았다던가,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변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부동산 문제는 존엄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주거 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발상을 전환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장기적인 주택가격 안정이 되어야지 투기 근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투기가 근절되면 자연스럽게 주택가격이 안정되겠지만 이는 단기적인 정책으로 편향될 수 있으며 또한 정책의 목표가 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에서는 투기 행위가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구태의연한 부동산 종합대책을 가지고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자산을 증식해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감을 충족하려는 심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 심리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사회적 담론을 통해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에 전반에 대한 공개념이 재정립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부동산시장은 시장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다른 시장들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피드백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 복잡계(complex system)의 중심에 있는 부동산시장이 시스템 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국민 대다수의 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대부분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모든 요인들을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이 주무부처의 관료들이 주축이 되어 장기적인 부동산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앞서 지적한 대로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다름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종합대책을 공모(公募)하는 것이다.

공모라고 하니 별 것 아닌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모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한 공모 개념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구글이 꾸준히 추진해왔으며 미국 실리콘벨리의 혁신사업가로 명성이 높은 피터 디아만디스(Peter Diamandis)가 강력하게 제안했던 문샷 프로젝트(Moonshot project)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아폴로 계획을 통해 소련에 앞서 최초로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정신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문샷은 상금을 건 경연대회를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시도를 말한다. 실제로 디아만디스는 엑스프라이즈 재단(X Prize Foundation)을 설립해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모를 통해 ‘장기적인 부동산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함으로써 주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둘째 일부 관료와 전문가들의 구태의연한 사고의 틀을 깨는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 공모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함양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개봉되었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사기 전과가 있는 수표 위조범 프랭크 애버그네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 FBI 요원 칼 핸래티(톰 행크스 분)에게 체포된 후 FBI에 협조해 위조수표범을 단속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고 수준의 수표위조범으로서 에버그네일은 다른 위조범들이 만든 어설픈 위조수표를 쉽게 식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갭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 전문가가 갭투자를 무력화시킬 좋은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이상 사고의 틀이 고정된 일부 관료들이 주도하지 말고 공모를 통해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아이디어를 발굴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10억 원의 상금을 걸고 《부동산 가격의 장기적 안정을 위한 방안》이라는 주제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널리 공모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스마트한 정부는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주무부처라는 이유로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으면서 오만과 무지로 점철된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따라서 이제는 겸허한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널리 국민들에게서 구할 때가 되었다. 그러면 재야에 숨어있던 여러 분야의 고수들이 뭉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에게 부동산 관련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교육 문제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정권의 제약을 받는 소수의 관료들에게 맡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코로나 19 사태는 이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직접민주의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적극 참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 정부가 이런 용기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해 보자.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공유광장(www.iksa.kr) 운영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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