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세상살이에서 보는 눈에 띠게 아름다운 광경들 중에서도 필자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나이든 노부부가 정답게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쭈글쭈글하고 힘없는 배우자의 손을 꼭 붙든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심도 깊은 안정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년 전에 대중의 찬사를 받았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76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이 잉꼬부부처럼 산 노부부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영원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변치 않는 사랑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플라토닉(platonic)한 사랑이라면 보다 영성적인 성향으로 인해 훨씬 더 오래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반면에 에로틱한 사랑은 감각적인 특성 때문에 지나쳐가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기 쉬울 것이다. 아이스크림 같이 오감을 자극하는 사랑은 식욕이나 성욕처럼 매우 인간적인 신체욕구에서 나오는 것이고 청소년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느끼는 풋사랑이라면 좀 더 순진무구하게 정서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사랑의 유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자기중심적인(혹은 내면지향적인) 사랑과 타인중심적인(혹은 외부지향적인) 사랑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타인 중심적이거나 외부지향적인 사랑이란 사랑의 대상이 자신의 몸이나 내면심리 영역 밖에서 찾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외부’라는 단어인데 내가 가진 마음과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행동의 영역을 벗어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내가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나의 외부세계에 속하는 사랑의 대상은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고 통제가능한 자신의 영역 밖에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을 다른 사람이나 주위 환경에서 찾게 될 때 그 외부지향적인 사랑은 매력 있는 이성(異性), 멋진 집이나 자동차 등 눈에 보이는 물질적 특성을 갖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대상에 대해 특별히 느껴지는 사랑의 감성이 지속되려면 사랑스럽게 보이는 타인의 행동이나 바람직한 외부적인 상황이 변함없이 사랑받을만한 조건이나 상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엔트로피(entropy) 법칙에 따라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고 무질서해지기 마련이므로 사랑의 대상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만다. 겉으로 볼 때 모든 좋은 조건들이 다 갖추어진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더라도 그 인연이 좋게 유지되기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행동, 또는 변화하는 외부상황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컷 @네이버 영화

다른 한편 언제 변할지 모르는 타인의 마음이나 바뀌어버린 외부적 조건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고 적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통제가 가능한 내면지향적인 사랑이 있다. 자기 자신의 내면상태에 초점을 맞추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외부에서 작용하는 삶의 변수들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훨씬 덜 취약하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란 외부의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사랑을 말하는데, 이 경우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랑의 대상이 가진 물질적인 조건이나 상태를 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계속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이 보유한, 변화하지 않는 본래적인 가치를 놓지 않고 사랑함을 말한다.

지금은 고물이 되어 돈 가치가 거의 없지만 사랑하는 '돌아가신 분'의 유품을 버리지 않는 심리와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을 지나 성숙한 나이로 접어들어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이성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의 대상이 잘생긴 얼굴이라면, 젊음의 아름다움이 시들어버리기도 전에 그 사랑의 생기도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에서처럼 주름지고 머리카락도 빠져버린 파트너의 얼굴을 계속 정겹게 바라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자신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성장시킨 경우에 가능해진다. 칠십 년 이상을 문자 그대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변함없이 다정하게 살아낸 노부부에 대한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살아야하는 현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말 서로 함께 가까운 거리에서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반기를 들고 반정부 시위를 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더 가까이에 있으면서 더욱 친밀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욕구 때문이다. 생계를 위협하는 실업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행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서양 어느 지역이든 전통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결혼도 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삶의 주요 목적으로 알았다.

필자는 아주 오래전에 일종의 ‘결혼의 경제학’ 논리를 뒷받침하는 어느 사회학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한국사회의 경우에 자기 자신이 가진 약점을 보상해주는 전략적인 혼인관계가 미국에서보다도 오히려 더 보편화되어 있지 않나 짐작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은 남자와 얼굴이 예쁜 여자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사회제도적인 ‘거래’관계로서의 결혼을 통해 가난한 남자나 못생긴 여자보다 ‘결혼계약’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연기하는 추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오래전부터 실천해 온 ‘사회-심리-경제적’ 거리두기로 이해된다. 혼자서도 편리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에서 오는 거추장스러운 일상생활의 번거로움을 줄이면서 미혼 혹은 이혼 상태에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래사회에서 혼자 살면서도 기본욕구가 충족되는 상황이 더욱 편리하게 마련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전보다 쉽게 능숙해지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생길 것 같다.

무정한 세태의 흐름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소중한 사랑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영혼의 힘이 온전하게 아우러지는 전인적인 사랑을 키울 수 있는 힘을 내면에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먼저 자신의 의식세계와 심리상태를 살펴야 한다. 너무나 외롭고 혼자 있기가 힘들어서 살아갈 힘을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물질적인 것에서 찾으려 한다면 일시적인 위로를 넘어서는 진정한 행복으로 귀결되기는 어렵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스스로 성찰할 수 있고 혼자 있을 때에도 심리적, 정신적인 결핍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야 자기가 선택한 길을 걷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혼자이든 함께이든 삶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에 빠진 채 자신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이라면 설사 사랑의 대상에 변화가 생기고 환경적인 변수 때문에 불리한 영향을 받게 되더라도 외부지향적인 사랑을 하는 경우에 비해서 좀 더 오래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랑을 한다'(doing)는 사람이 그 사랑을 의미있게 지속하려면 먼저 스스로 사랑으로 '존재해야'(being) 타인지향적인 사랑이 제대로 성숙될 수 있다. 몸이 분주해지고 말이 오고 가고 선물을 주고받는 등 사랑한다는 행위가 오랜 세월동안 꽃피우는 인간관계로 이어지려면 사랑행위로 보이는 모든 현상을 표출시키는 진실한 마음의 힘이 먼저 튼튼하게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한 송이 꽃이 예쁘게 피어나려면 파란 잎과 싱싱한 줄기가 눈에 보이기 전부터 식물생명체 뿌리에 자양분이 되는 흙과 물, 그리고 성장하려는 의지를 이끌어내는 태양의 힘이 충분히 보급되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고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요즈음에 의식의 초점을 내면에 둠으로써 각자의 삶에 뿌리내린 사랑을 좀 더 잘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무척 좋은 일이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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