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I.
언론은 진실을 쫓는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진실은 뉴스여야 하며 분명한 사실이어야 한다. 같은 진실일지라도 사람에게 코가 한개 달려 있다는 사실은 뉴스가 아닌 것이며,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도 방화인지 실화인지를 가려내야만 진실된 ‘사실보도’를 할 수 있다.
학자는 진리를 추구한다. 같은 진리라도 2가 1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그는 이미 학자가 아니다. 학문의 자세는 지속적이어야 하며, 또한 깊고 넓은 내공을 쌓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아’는 외관상 이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피차의 극치에서는 서로의 공통점에 마주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이따금 ‘뉴스를 안본다’고 무슨 큰 자랑이나 되는 듯 말하는 사람을 본다. ‘보나마나 뻔해서’, ‘봐도 재미가 없어서’, ‘범죄나 사고가 많아 우울해지니까’, ‘잡다한 이야기가 생각에 도움은커녕 번잡하게만 만드니까’ 등등 여러가지 이유를 댄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뉴스를 굳이 안보겠다는 마음가짐 바탕에는 떳떳할 수 없는 교만함이 얼룩져 있음이 간파된다.
II.
어떤 기자는 ‘추수가 다 끝났다.’, ‘날씨가 서늘해졌다.’ 등등을 단편적으로 기사에 끼워 넣어 계절은 늦가을로 접어들었고, 얼마 안 있어서 겨울이 닥친다고 시기나 상황을 아울러 보도한다. 계절의 변화를 학문으로 터득하고 있는 사람은 피부로써 느끼는 태양열의 감촉, 일출과 일몰의 방향,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도 가을임을 알고 겨울의 접근을 미리 안다.
그러나 계절이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경우라면 흐름에 불변의 공식이란 게 있을 리 없다. 하도 ‘의외’도 많고, ‘돌연’이 많고, 정치적 변수나 정치인 ‘결단’ 따위 등이 많으니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전례를 근거로 한 보편성이나 상식이란 게 있어 그것에 근거한 불안한 전망이 조금 가능할 뿐이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러한 격변을 예측하기는커녕 뒤따라가기도 바쁜 형편인데, 신문 방송 등 언론을 외면하면서 과연 ‘진실의 움직임’과 ‘사실의 진행’을 어떻게 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찌 자랑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인가 터득하고, 무엇인가 감득하고, 무엇인가 내다보는 눈을 갖춘 도사라면야 신문쯤은 읽으나마나겠지만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때문에 여기에서 신문과 기자에게 안겨지는 문제점이 있다. 즉, 진실을 찾고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며 독자를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III.
학자의 경우라면 결코 공감, 찬성, 인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만을 추구할 뿐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찾아낸 진리에 대해 누가 공감을 하건 말건, 찬성을 하건 안하건, 개의치 않으며 그 진리에 ‘인기’가 있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 것이 학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공들여 밝히고 찾아낸 진리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비방하고 비웃고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가 다수결로 정해질 것도 아니고, 호의에 의해 장식될 수도 없을 뿐만아니라 반대나 비판, 배척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찬양에 우쭐대서도 안 될 것이며, 비방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 학자라야 하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가. 국민을 의식해야 하고, 사회적 반향을 무시해서도 안되며, 여론을 형성하며, 인기도 높여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언론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기사나 흥미를 끄는 기사를 쓰려는 욕심은 어느 기자에게나 있다. 기자본능이다. 그래서 특종을 다투고 기획을 다툰다. 그렇다고해서 기자는 독자들이 기뻐하고 박수칠만한 기사만을 골라 쓰지는 않는다. 독자가 아무리 불쾌하게 느낀다 해도 사실보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내에서 횡령, 성폭행, 후원금 사기, 정부 정책의 불합리성과 모호성 등을 독자들이 ‘기분’ 상할까 생각해서 보도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선수의 KO패를 독자들의 비위를 맞춘답시고 KO승이라고 쓰겠는가. 국민들 기분 좋으라고 산유국에서 기름을 무상으로 공급한다고 쓸 것인가.
극과 극에서 만나듯이, 학자가 진리에 진지하듯이, 신자가 참 삶에 성실하듯이, 기자는 사실에 엄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기자는 독자를 의식해야 하니 언론의 길은 험난하기까지 하다. ‘신문을 안 본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기자나 언론사의 반성은 이보다 훨씬 진지하고 가혹해야 한다. 모름지기 신문은 독자를 인식하면 할수록 진실의 통찰을 깊게 하고 사실 보도를 더욱 성실하게 해야 한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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