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얼마 전 재미있지만 마냥 웃을 수도, 슬프지만 마냥 울 수도 없는 그런 웃픈 광고를 보았다. 알바의 개념을 바꿀 정도로 전문가 뺨치는 능력을 가진 알바생들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광고다.그 중 특히 재미있는 두 편을 소개한다.

[편의점 편]

캔 음료의 로고 위치가 제 각각인 진열대가 클로즈업 된다. 그때 “손은 눈보다 빠르다”라는 영화 타짜의 그 유명한 대사가 멘트로 나오며 알바생의 손이 진열대의 캔 음료들을 스쳐 지나간다. 순간 한방에 모든 로고가 정면을 보며 칼같이 정리된다.

“와우! 스피드, 레이아웃 완전 매대를 뒤집어 놓으셨다.”라는 박미경의 멘트로 마무리된다.

[영화관 편]

극장 매표소 앞에서 한 남자가 매표소 여성 알바생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님: 나쁜 자식들 두 장이요

알바생: 아! 나쁜 녀석들 두 장 맞으시죠?

손님: 세차권은 어디서 받나요?

알바생: 주차권은 3시간까지 되구요, 왼쪽 복도 끝에서 받아 가시면 됩니다.

박미경: 와우! 이해력, 순발력 완전 충무로를 뒤집어 놓으셨다.

혹시 이 광고가 왜 재미있는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손님이 “나쁜 자식들”이라고 틀리게 말해도 알바생은 “나쁜 녀석들”이라고 정확히 알아 듣는다. 손님이 “세차권”이라고 잘못 말해도 알바생은 “주차권”이라고 정확히 알아 듣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는 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광고는 알바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바꾼 광고이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알바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초보, 비전문성, 단기, 임시 등의 이미지가 연상된다.그러나 이 광고에서는 프로 뺨치는 전문성을 가진 알바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치 생활의 달인처럼 알바의 달인들이다.

소위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000 시간은 꾸준히 그 일을 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해 보면, 광고에 나오는 달인 급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매일 8시간씩 하루도 안 쉬고 3년반을 계속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 사회를 흔히 전문성이 필요한 사회라고 한다. 또한 알바에서도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는다.어디까지나 알바는 알바여야 한다. 임시로 단기간 하는 주업이 아닌 부업이 알바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알바가 주업이 된지 이미 오래다.

전문성이 필요한 제대로 된 일자리가 부족해서, 그러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오랫동안 알바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달인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런 전문성은 이 사회의 아픈 단면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물론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자리에 연연했던 추악한 욕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화제를 돌려 은퇴생활로 돌아와 보자.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소일을 위해 뭔가를 새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시간과 돈이 든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에 비해 운동신경, 학습능력, 집중력 등 뭔가를 배우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능력들이 저하되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전공인 '잘 아는, 잘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모르는 것을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잘 아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학 전공이건, 은퇴 전 직업이건, 내가 잘하는 주특기인 전공을 활용해서 소일거리를 찾아 보자. 그것은 말 그대로 소일을 위해 혼자서 즐기는 자기만족적인 활동일 수도 있고 창업이나 알바 혹은 봉사나 재능기부일 수도 있다.실제로 은퇴 전 전공을 살린 소일거리로 재미와 보람은 물론 짭짤한 수입까지도 만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입창출까지는 아니어도 은퇴 후 소일거리의 기본 조건인 돈 적게 들면서 시간 잘 가고 즐거워야 한다는 면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 전공인 마케팅/광고영역 뿐만 아니라 평소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며 즐겼던 인문학/여행/미식/은퇴 등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소일거리를 찾았다. 몇 달 전부터는 <광고로 세상보기>라는 새로운 글도 쓰고 있다. 광고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주요 이슈, 사람들의 생각, 다양한 방면의 트렌드 등 우리를 둘러싼 세상 전반에 관한 글이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은퇴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에피소드를 뽑아 소개할까 한다. 은퇴 전 전공을 활용한 소일거리 만들기의 한 예시로서 은퇴인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또 다른 바람은 이 글을 읽는 은퇴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꿈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컴퓨터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책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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