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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우리의 메시지[도영인의 정화수]
도영인 | 승인 2020.07.31 10:45

[논객칼럼=도영인]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인생의 무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왕이면 성공적인 삶을 잘 살았다고, 약간 자부심도 느끼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대로 자신이 쌓아 온 개인 업적이나 사회공헌에 대한 기록을 인생 성공의 잣대로 쓴다면, 그리고 그런 외적인 자아상에 대해 스스로 갖고 있는 자존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기 쉬어진다. 특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 같은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에 직면하여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로 추락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보다도 더욱 소중한 자아정체성은 외적인 모습과는 무관하다. 자신이 가끔 실수도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평소에 알고 있다면, 그리고 일상에서 표출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세상에서 들려오는 비난의 말에 맞서서 자신의 삶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를 알고 있을 때 스스로의 과오를 극복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집안 식구는 물론 친구나 직장 동료까지도 잘 알지 못하는 나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저 남들이 보고 말하는 나의 모습에 취해서 무의식에 깊이 숨어있는 그늘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 위선으로 포장된 아름답지 못한 행동패턴 등을 평소에 알아채지 못하고 일상에 묻혀서 그럭저럭 살아가기 쉽도록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경쟁위주의 세상에서 얻는 평판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자아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허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남들 다 하는 대로 세태에 장단 맞추어 적당히 눈치 보면서 그저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다보면 나라는 한 인간이 가진 모순성과 불합리성을 스스로 알아채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정의로움을 주장하는 한편, 말과는 달리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을 포착하려면 평소에 나의 삶을 돌아다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늦게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게 된 후에 감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인간의 목숨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일종의 돌발사고가 아니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자살이든 타살이든 인간의 죽음도 돌발적인 사고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현상과 자살행위는 인류의 의식진화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지에 대해 온갖 과학기구를 동원하는 생물학자와 뇌신경과학자들은 우리 개개인이 최첨단 기계보다도 훨씬 더 경이로운 생명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심장 속에는 뇌와 비슷하게 대략 4만개의 특수세포가 작용하여 마치 '심장 속에 있는 작은 뇌(little brain in the heart)'처럼 느끼고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렉 브레이든(Gregg Braden)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약간 설명되었듯이 이 심장세포들은 느끼는 기능을 두뇌와는 독립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 경험은 의식이 작용하는 두뇌뿐만 아니라 감성지능적으로 느끼는 심장(heart) 속에도 저장이 된다는 것이다.

@관련 유튜브 동영상

한국에도 몇 년 전에 번역서로 나온 <Divine Matrix>의 저자로서 과학자이자 영성가인 브레이든에 의하면, “인간의 심장은 사람 몸속에 있는 가장 강력한 자기장(magnetic field)이다.” 그가 말하는 소위 심장 지능(heart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활성화되는 좌뇌(left brain)와는 달리 심장은 거의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총체적인 지능과 연결되어 있는 뇌신경세포에 비교하여 심장 속 특수세포는 오히려 더 빨리, 가장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직감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기억이 계속 의식 속에 남아 있을 때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두뇌에서는 합리적으로 정당방위적인 결론을 내었더라도 가슴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험에 대한 감성적인 기억은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뿐이다. 과거 일로 인해 현재 주어진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비효율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을 성취하기 어렵게 된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된 자기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만큼 큰 용기가 이 세상에 없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고자 한다면 이미 저질러진 실수와 과오를 딛고 일어서는 참된 용기를 낼 수 있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나 다른 사람으로 인해 가해진 물리적인 위협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평소의 자신감과 평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떤 이유로든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할 수 있는 자해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처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전문인일 경우에 자신의 직업과 관련하여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매우 흔하다. 특히 의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심리상담가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경우, 평소에 심호흡을 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호흡명상을 하면서 수련을 하는 사람이라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는데 호흡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평소에 호흡명상이나 심호흡 연습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숨 막힐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집단지성적인 측면에서 통찰해 보아야 할 만큼 중요한 질문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불행하게도 잘못을 저지른 후 자책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두려움에 빠진 연약한 목숨을 살리는데 우리는 어떤 도움이 되는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 부정의, 범죄행위 등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포용적인 이해심을 발휘할 수 있는가? 범죄나 실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어두운 그림자를 갑작스레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특수상황이 아닌 평소에 다른 사람의 자존감에 보탬이 되고 용기를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는 말을 얼마나 하고 사는가?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문화의 흐름을 들여다 볼 때 우리는 평소에 생명을 살리는 메시지를 흘려보내는데 익숙한가, 아니면 생명을 죽이는 말과 비난을 정신없이 뿌려대는 일에 더 바삐 사는가?

픽사베이

엄청나게 높은 한국사회의 자살률을 줄이려면 먼저 자신의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집단문화적인 취약성을 이해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지역사회 속 연대감이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행동’ 그 자체와 취약한 상황 하에서 그 사람의 본성에서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범죄적인 행동을 무조건 관용이나 어설픈 자비심으로 해결해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이 리더십과 같은 사회자본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균형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중한 생명체 종(種)으로서의 ‘우리는 하나’라는 인류의식과 개인의 실수를 극복하면서 모두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재기의 기회를 허용하는 집단지성적인 성숙함이 우리 사회에 하루빨리 뿌리내려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내리는 소위 객관적인 평가보다도 더욱 두려운 것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삶의 원칙에 준거한 자가 평가(self-evaluation)이어야 한다. 스스로 정한 원칙에서 벗어났을 때 진정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사회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참된 자아정체성을 잠시 망각하고 실수한 사람이 우선 자신을 용서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자신의 참된 모습이 어떤지 자아성찰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잠시 궤도에서 벗어났을지라도 누가 뭐래도 정의로운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잊지 않는다면 새 출발을 시도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스스로의 약점을 직시하고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다른 한편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용서를 허락하는 일은 진보사회에 필수적인 일이다. 중요한 사회자본인 지도자적인 역량을 이끌어 가는 지역사회 전체의 성숙함을 통해 사회통합이 이루어진다.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이미 잘못이 저질러진 경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은 용서받고 용서하는 일이다. 그러나 쉽게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집단지성 면에서 성숙한 사회라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 한국사회처럼 내편과 네 편 등 이익집단 중심으로 갈라진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참된 자아정체성보다는 사회의 평가기준에 의존하며 사는 경우에 대인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짊어져야 할 온갖 시련을 감내하면서 잘못된 상황을 되돌려 놓으려는 의지를 유지하기 어렵다. 탁월한 지도자 자질을 보여준 이 나라의 이름난 일꾼들이 참으로 한탄스러운 자살결정을 내린 사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박하게 분열된 사회 환경 속에서는 누구나 사회적으로 추락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적인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 본질적인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면 알수록,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기이익을 도모하는 정치적인 충돌보다는 공익을 먼저 보호하려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무책임한 비난에 지나치게 취약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의 자아정체성과 사회분위기가 모두 밝고 건강한 대한민국에서 높은 자살률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앞날을 꿈꾸어 본다. 생명을 살리는 메시지를 너도 나도 바쁘게 서로에게 선사하면서 다함께 평안한 한국사회 모습을 절박한 심정으로 그려본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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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인  ssdoe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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