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과외를 해볼까?”

예전에 과외 잠깐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다시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돈도 벌 수 있고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을 뿐더러 마침 여름방학이라 시간 여유도 많으니 안 할 이유는 없었다. 뭘 고민해, 당장 시작해야지!

과외 모집 사이트에 나의 이력과 소개글을 올렸다. 유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를 가르친다며 나 자신을 홍보했다. 어느 학교에 다니고, 외국에서 얼마 동안 살았고, 어떤 경력이 있고, 과외 경험은 얼마나 되는지 언급했다. 끝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료로 시범수업 한 시간 해드립니다’.

문의가 쇄도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학부모님이 자녀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을 줄이야. 여러 학부모님이 관심을 갖고 연락을 주셨고 결국 만날 날짜를 정했다. 소개글만 보고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아님 ‘일단 한 번 만나나 볼까’하는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픽사베이

약 20명의 가정을 방문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이들을 계속 만났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유치원생, 초등학생, 활발한 아이, 내성적인 아이, 외동, 남매 혹은 친구와 함께 등등 다양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계절이나 동물은 무엇인지 등 마치 친구와 수다떠는 것처럼 편하게 묻고 답하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각양각색의 아이를 상대했지만 시범수업 후 학부모님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앞으로 우리 아이 잘 부탁드려요!”

알차고 유익한 수업을 준비해갔지만, 그보다 아이를 웃기는 데 중점을 뒀다. 풍부한 리액션과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였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바보 캐릭터를 자처한 것도 모자라, 뛰고 구르고 쓰러지며 땀을 뻘뻘 흘려도 멈추지 않는 스포츠 정신까지 발휘했다. 나의 눈물겨운 사투(?)는 효과 만점이었다. 아이는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러 온 건가, 웃기러 온 건가. 기분 좋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먼발치에서 수업을 지켜보던 어머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보나마나 이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이런 과외 선생님은 없었다, 이 사람은 선생님인가 개그맨인가’.

사실 나는 학부모님과 시범수업을 할 날짜를 정하는 순간 직감했다. 시범수업이 일회성 수업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그 (아직 만나지도 않아서 얼굴도 모르는) 아이와 앞으로도 계속 만날 거라는 걸. 나는 자신이 있었다. 어느 아이를 만나도 폭풍 수다를 떨 자신, 아이를 웃길 자신, 아이가 나를 좋아하고 계속 보고 싶어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나는 전문 과외 선생님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다. 따라서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맡길 만한 선생인지 못미더울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검증하고 싶어하실 게 분명하다. 학부모님이 나의 학력, 경력, 기타 이력을 꼼꼼히 따져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재학증명서나 학생증을 요구하신 분이 두 세 분 있었다.

하지만 그 외 대다수의 학부모님은 어떤 증명서나 자격증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 분들은 왜 나를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았던 걸까?

어떻게 보면 나는 구직자고, 학부모님은 고용주다. 고용주는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할지 말지, 돈을 지급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한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구직자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 애쓸 테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유능한 인재입니다’라고 학력과 경력을 나열하고, 고용주가 그것을 요구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무얼 믿고 저에게 댁 아이를 맡기신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가치는 한 시간의 시범수업으로 증명이 되었던 게 아닐까.

깔깔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집 안에 울려퍼지던 소울 넘치는 리액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이미 검증이 끝난 게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아이 웃음소리, 땀방울, 망가진 헤어스타일, 갈라진 목소리가 나의 스펙이자 자격증인 셈이었다. 어머님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셨을까?

‘그래, 그거면 되었다. 합격!’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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