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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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무릎 꿇고 지난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관련 피해자(피해국)에게 사과하는 모습의 사진이 신문에 나란히 배치된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의 진지한 모습이 상징하는 바 적지 않았다고 본다. 50년의 시차가 있었지만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관되었다고 생각한다.

사과와 반성이란 바로 지성이자 용기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사과할 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김종인은 진정 대인 정치인이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을 찾아 무릎 꿇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일백 번 사과하고 반성해야 마땅한데 이제 그 첫걸음을 뗀다.”

김 위원장이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사과 메시지를 발표할 때, 지켜보는 이들을 숙연케 했다. 힘겹게 무릎을 꿇은 김 위원장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아직도 낡은 이념 대립이 계속되며, 사회적 통합과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

“여기 잠들어 있는 원혼의 명복을 빌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유족들께 깊이 죄송하다. 제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 아닌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의 이 발언에는 진정성이 담겼다. 그동안 미래통합당과 그 전신의 지도부가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삼촌 무덤 벌초하듯 진정성이 결여되고, 했더라도 다른 한켠에선 야유하고 조롱하는 행동을 보였다. 지난해 2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통합당 의원들이 5·18 유가족을 폄훼한 발언을 쏟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위원장은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 발언에 우리 당이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 그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였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다”며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는 5.18 당시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진솔하게 설명했다. 그는 당시 서강대 상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1980년 5월 17일 대학 연구실에 있었다. 시위를 중단할 거란 방송을 듣고 강연에 열중했다. 광주에서 발포가 있었고 희생자가 발생했단 소식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 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는 소극성 역시 작지 않은 잘못이다. 역사의 법정에선 이것도 유죄다. 나는 (그후)신군부 집권을 위해 만든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나중)여러 번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과 군사정권에 반대한 국민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이에 사죄한다.”

솔직하고도 진정어린 사과라고 평가한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하며 호의호식했던 이 나라 지도층이 과연 이렇게 사죄를 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들에 비하면 김종인 당시 교수는 경제학 교수로서의 학문적 스킬을 군부정권에 잠깐 제공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기 반성을 5.18 민주항쟁 추모탑 앞에서 했다.

사진 미래통합당 홈피 캡쳐. 맨 앞이 김종인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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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위원장의 이런 모습은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이 폴란드를 찾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해 무릎을 꿇고 통절하게 사죄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브란트 수상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지구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독일 수반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단순한 사과 같지만, 결국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1990년 분단된 독일 통일을 이룬 초석이 되었다.

냉전이 강화되던 때, 미국과 소련은 양국 모두 자기들 유리한 입장에서 분단의 영속성이 가장 유효한 정책이라며, 독일 통일을 사실상 방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외교무대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전쟁 범죄국가에 패전국이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이러니 강대국 마음대로 독일을 쥐어흔들었다.

독일 인접국인 프랑스, 폴란드, 영국 또한 독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경기를 일으킬 판이었다. 독일이 통일되고 부강하게 되면 필연코 또 전쟁을 일으키고, 그러면 인접국 국민이 희생되고 영토를 빼앗길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부강은 주변국의 희생을 가져온 지난 역사에서 그들은 더 이상 독일이 통일되고 강해져선 안된다고 믿었다.

이때 브란트 수상이 나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폴란드 땅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피해국을 지원했다. 그런 다음 서방국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평화와 인권을 중시하는 모범적인 민주국가와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전쟁 반대는 물론, 인권과 평화, 호혜와 평등, 박애와 헌신의 가치를 구현했다. 이를 보고 인접국이 조금씩 독일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민주적 가치에 충실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래서 독일 통일을 찬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통일하면 묵인하겠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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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라고 해서 내부 문제가 없었겠는가.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분자가 있고, 브란트 정책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이 있었다. 동독은 소련 사회주의를 신봉한 정치 체제였고, 서독은 서방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서 좌파, 우파에 극우파, 극좌파까지 등장해 갈등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냉전 구조하에서 남북이 대치한 것과 같이 서독과 동독이 대결하고, 서독 내에서도 좌파, 우파, 거기에 극우파까지 등장해 정치 갈등이 심했다.

익히 알다시피, 전범국 독일은 패전 후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4개국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았다. 이중 서독은 자유진영인 영국 프랑스 미국의 통치를, 동독은 공산진영인 소련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미소 냉전이 강화되면서 동서독의 분단이 고착되고, 베를린도 동서 40km에 이르는 장벽까지 설치되어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서독 기득권 체제가 자리잡고, 이들은 어느새 통일보다 현상유지 정책을 고수했다. 통일이 되면 행여나 그동안 누린 분단 기득권이 허물어질까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의 기득권 세력과 다를 바가 없다. 대의보다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더 교조적이고 대립적이고, 외세지향적이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치른 후과라고 하지만 우리는 남북 상호 극단적 적대 정책을 썼다. 남한의 경우, 반공 대결주의, 친미 사대의 기조를 유지했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분단 기득권이 견고한 성벽을 쌓아 70년 체제를 유지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남북화해를 반대한 주 세력이다.

남북화해가 이루어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무너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행해온 독선과 오류와 모순들이 드러날까봐 화해를 외면, 방해하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겉으로야 통일을 말하지만, 내면으로는 거부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독일은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세계를 설득했다. 대의에 충실했다. 내부 갈등을 협치를 통해 조율했고, 외부 세계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민주적 가치에 충실한 정치체제로 응답했다. 그 결과 분단 45년 만인 1990년 4개국 및 유럽의 승인을 받아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지금 최고의 민주국가, 복지국가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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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까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차이점이 있길래 주변국이 경계하는 독일은 통일을 이룬 반면에 우리는 이루지 못할까.

나는 김종인 위원장의 행동에서 답을 찾는다. 가해자가 진정으로 용서를 빌고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면 통합의 손길이 미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역사의 비극과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는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부 통합을 이룬다. 냉전의 대결주의를 벗겨내는 것은 바로 위선과 허위를 벗겨내는 일이다. 한꺼풀만 벗기면 우리는 여태 야만의 시대를 살았음을 알 것이다. 특히 지배세력에 의해서 이것이 강제되었다.

비약을 하자면, 김종인의 사과가 계기가 되어 순기능으로 작동한다면 통합당에 의한 동서 화합, 남북 화해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 유학파다. 합리적, 이성적 공간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런 그가 내부 통합을 이루고,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갈 수 있다. 그가 ‘한국판 빌리 브란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보수정당인 미국 공화당이 중국과 수교를 한 역사를 통해서 보듯, 보수 정당 미래통합당이 남북 문제를 더 쉽게 풀 수 있다. 국내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는 보수정당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와 평화가 민주화 세력의 전유물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대인 정치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정치 자산을 소아병적으로 다루지 말고 김종인의 진정성을 협치의 계기로 삼아 독일에서처럼 내부 모순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화해, 협력의 ‘사실화’를 그려나가기를 바란다.

빌리 브란트와 김종인 위원장의 무릎 꿇은 사진을 보고 느낀 소회는 이렇게 한반도 미래에 희망을 걸게 한다. 기회는 작은 단초에서도 오는 것인즉, 지도자라면 기회의 시간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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