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무창포 갯벌에서

[논객칼럼=박정애]

태풍 속으로 달렸다. 취소 불가능한 예약이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도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해 단 시간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후 우린 콘도에 고립되었다. 모든 출입문이 폐쇄된 로비를 거닐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순간 출입문 한쪽이 퍽 소리를 내더니 유리 파편이 흘러내렸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유리들도 깨질까봐 겁이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 갇혀 거센 파도와 꺾일 듯이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들, 그리고 신들린 듯이 나풀거리고 있는 현수막, 살수차로 뿌린 것처럼 사선을 그으며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꾸만 저 태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발동했다. 사실 나는 태풍을 사랑한다. 태풍 같은 사랑, 역사, 현장 속에서 그 바람과 맞서든, 그 바람에 등이 떠밀리든. 그 격렬함 속에선 안일한 일상의 권태나 지겨움이 없고 매 순간 살아 날뛰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이렇게 갇혀 있다 올라가겠구나 하며 수시로 창밖을 내다 보다 콘도 로비로 다시 내려가 보았다. 깨진 유리창 수리가 시작되었고 정문 출입도 허락이 되고 있었다. 태풍이 불어도 주말이라 그런지 오전보다 로비가 더 북적거렸다. 식당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모래 바람을 피해 인도로 걸어가다가 남편과 아들한테 이제 나와도 될 것 같다고 전화로 알려주었다.

먼저 갯벌에 가 보았다. 갯벌과 갯벌 사이에 놓인 시멘트 길을 통해 그 끝에 방파제가 쌓여 있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파도가 만들어 낸 물거품이 방파제에 가득 쌓여 있는데 꼭 세제를 풀어서 거품을 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다음에는 썰물로 드러난 모래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통 작고 귀여운 구멍들로 가득 차 있었고 새끼 꽃게들이 그곳을 쉴 틈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픽사베이

또 모래사장 가득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매기 떼들이 한 마리 예외도 없이 바람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수백 마리가 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왜 바람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바람을 등지고 앉아 있으면 자꾸 뒤로 밀려가니까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남편이 말했다. 우리도 따라 해 보니 등지고 서 있으면 바람에 밀리는데 마주보니 오히려 바람이 내 양옆으로 빠져 나가 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시멘트 길 맞은편에 있는 갯벌로 가 보았다. 태풍에 씻겨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마다 역동적인 생명들의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횟집에서 서비스로 나오면 후루룩 까먹을 줄만 알았던 고동의 새끼들도 가느다란 발들을 내밀고 힘차게 헤엄치고 다니고 있었다. 모래랑 색깔이 똑같은 걸 보니 아마도 모래무지인 듯 한 새끼 물고기도 발랄하게 수영 중이고...소라게도 껍데기에 몸을 숨긴 채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웅덩이마다 작은 생명체들이 어찌나 가득 차 있는지 갯벌이 ‘생명의 보고(寶庫)’라는 말이 실감났다. 게임이 아닌 이런 생태 체험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니 흐뭇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을 이처럼 생명으로 충만한 야생으로 좀 더 인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참 교육인데 도시에 살다 보니, 그리고 여전한 서열 사회에 살다 보니 자꾸 학원으로 내몰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또한 더 이상의 갯벌 간척 사업을 막아야 하는 이유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환경보존보다는 개발논리를 앞세우는 우리의 현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 나름의 실천을 도모했고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갈피를 못 잡은 채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다.현실과 이상, 실천과 도피, 우리와 나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다. 조금만 방심하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거나 추락하게 된다. 그럼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인가.

무창포의 태풍은 어느새 작별 인사를 하고 등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태풍 한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믿는다. 강화유리를 박살낸 그 무시무시한 위력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보란 듯이 건재한 생명의 힘을. 그 힘이 내 안에도 뜨겁게 흐르고 있기에 나는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도 내게 불어 닥칠 수많은 태풍을 이겨내고 점점 더 생명력이 왕성한, 생명을 위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임을.

 박정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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