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논객칼럼=김선구]

1990년대 초반 중국에 출장 갔을 때 일이다. Bank of China 임원과 미팅시 '은행이 크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로 "상해에서 제일 큰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 수가 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전산화가 되지 않은 이전의 은행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숫자이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은행의 역사에서 질적인 면으로 가장 큰 획을 긋는 변화는 주판이 사라지고 전산화가 이루어지며 끊임없이 진행된 디지털화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은행 입출금 거래에서 창구를 통한 거래 비중이 10% 이하일 정도로 비대면채널 이용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해방 이후 외환위기 이전까지 소위 5대 시중은행이 선도하던 업계에서 이제는 그 은행들 이름은 모두 사라지고 후발은행이었던 신한과 하나가 4대 리딩뱅크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종업계 내에서 일어나는 순위 바뀜과 디지털화일 뿐인데 비해 앞으로 다가오는 변화는 다른 업종과의 싸움으로 영업과 운영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혁까지 초래하리라 예상된다.

몇 년 전 미국 최대은행인 제이피 모건 체이스를 15년째 이끌며 미국 금융계를 대표하는 인물인 제이미 다이몬 대표이사 회장의 인터뷰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어떤 은행이 가장 위협이 되냐",  "씨티냐? 뱅크 오브 아메리카냐?"는 질문에 그가 던진 예지적인 대답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도 느껴진다. 그는 "기존 어떤 은행도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는데 아마존이나 구글 등이 본격적으로 은행업에 뛰어들면 그들과의 싸움에서는 승산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기존 은행들은 오랜 기간 집 증축하듯이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산망을 확장해와 매번 새로운 업무가 추가될 때 개발비용이 크고 시간이 걸리면서 유지비용도 큰데 비해 아마존이나 구글은 새로 시작하는 잇점으로 훨씬 싼 비용으로 최신의 강력한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고비용 저수익 점포망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상품개발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몇 배의 연봉으로 모셔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고 자유롭게 경쟁하면 그들을 감당하기 어렵다 했다.

다이몬 회장의 우려를 반영한 뉴스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네이버의 금융시장 진출이 다가오며 은행들이 "핀테크 기업들에 비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진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홈피 캡쳐

그 하나는 작년 10월 금융위원회가 주도해 도입한 오픈뱅킹 성과 평가 세미나가 열린 7월 6일에서다. 오픈뱅킹이란 계좌조회나 이체 등을 표준방식으로 만들어 핀테크 기업 등 다른 사업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제도다. 그 결과로 자금 이체시 핀테크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오픈뱅킹에 대한 은행의 요구사항은 고객정보 제공 의무기관에 핀테크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상호주의원칙과 오픈뱅킹 시스템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을 핀테크기업도 공평하게 부담시켜달라는 요구다. 그 외에도 온라인 대출비교 플랫폼을 둘러싼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 상태다.

아직은 핀테크 기업의 업무영역이 아주 제한적이지만 계속 확대되리라는 예상이다.

다른 하나의 주목할 뉴스는 2020년 8월 12일 자 한국경제에 실린 “은행점포 축소에 제동을 거는 금융당국”이란 기사다. 2012년 7681개였던 은행점포가 2020년 3월말 기준 6652 개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금년 상반기 4대은행이 감축한 점포수는 126개로 지난 한해 88개를 크게 넘어섰다고 한다.

점포 하나당 인건비와 임차료로 매달 15억 원 정도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 보호란 공공성 때문에 점포축소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은행들이다. 금융당국이 점포축소 권한을 쥐고 있지는 않지만 2019년 6월부터 은행연합회 자율규제란 형식으로 사전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은행업 특성으로 인가와 규제를 들 수 있다.인가와 규제는 모두 정부 정책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핀테크로 인한 은행환경변화는 예측 가능하고 그 파급될 충격은 은행업 정의를 바꿀지 모른다. 변혁의 강도와 속도는 정부의 인허가와 규제에 크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큰 변혁을 앞두고 정부는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또 분명한 원칙에 따라 인가와 규제를 펼쳐야지 단기적인 처방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큰 원칙으로 몇 가지를 들어본다.

하나는 소비자편의성을 높이는 첨단기법개발을 장려해야 한다.

둘은 은행시스템의 안정성 유지를 해치는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

셋은 디지털 취약계층 보호 등 공공성을 위한 제반 업무를 위해 은행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핀테크 기업 등을 포함한 모든 참여자에게 공평하게 부담시키거나 그게 어렵다면 공공성을 위한 서비스 인프라를 별도의 공공재로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

넷은 기존 은행중 상당수가 공룡의 멸종처럼 사라질 운명이라 예측되면 충분한 시간에 거쳐 연착륙이 되도록 규제의 속도를 조절하는 계획도 마련해서 국가경제에 대한 급작스런 충격을 줄여야 한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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