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의 달빛생각]

 교동창들의 '카톡 채팅장'엔 다양한 삶이 살아있어...

고등학교 동창생 스무 명 남짓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채팅창이 있다. 채팅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끌림에 가입했고, 지금은 한 발짝 떨어져서 관람만 하는 형국이다. 졸업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나, 대부분 결혼도 하고 직장에서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녀석들이다. 모든 집단처럼 대화를 이끌어가는 빅 마우스도 있고, 매번 새로운 이슈를 물어다 주는 충실한 전달자들도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연예인 가십 기사, 인사치레 성 생일 축하 등을 제외하면 최근 1년간 채팅 창을 지배하는 이슈는 3가지다. 바로 맛집, 코로나, 부동산이다. 

사진=픽사베이

맛집 정보는 꾸준히 올라온다. 다들 공감을 하는 주제다. 기자를 하는 녀석은 전국의 맛집 지도와 유명 음식점 리스트를 공유해 줘서 유용하게 쓰기도 했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해외 출장이 잦은 친구는 해외 음식 사진을 자주 올려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모두 부산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일하는 녀석들이 더 많기에, 부산 음식 잘하는 곳을 발견하면 너나없이 추천하기에 바쁘다. 특히 돼지국밥집은 어떤 집이 가장 부산 스타일에 가까운지 난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입맛을 돋우는 정구지 무침과 꼬릿한 사골 육수와의 미묘한 조화를 논하는 수준들이니 웬만한 소믈리에는 명함 내밀기도 어렵다.

코로나 체감온도- 카톡에선 천차만별의 세상!

코로나를 체감하는 정도는 온도 차가 제법 컸다.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녀석은 몇 달째 재택근무를 한다고 불평이다. 집에 있으니 애도 봐야 하고, 청소도 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해서,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얘기에 자영업을 하는 친구는 아무 반응이 없다. 침묵의 의미를 몇몇은 알고 있겠지만, 애써 묻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애를 키우는 친구들은 육아 전쟁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의 넘치는 열정을 키즈 카페나 놀이동산에서 해소했는데, 이젠 몸으로 놀아줘야 한다. 아들 가진 아빠들을 더 죽을 노릇이란다. 하지만 애 없는 유부남들은 되려 쇼핑하고 문화생활 즐기는데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맛집에 줄도 서지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도 없으니 오히려 쾌적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아동 돌봄 쿠폰이 자녀당 40만 원씩 지급되었을 때, 잠시 배 아파했으나, 이젠 크게 괘념치 않고 더 일상을 즐기는 모습들이다.

사진=픽사베이

 부동산은 친구들끼리도  측정온도차 심해

부동산의 온도 차는 체온계로 잴 수 있는 측정 범위를 넘어 버렸다. 대기가 없는 달은 낮에 영상 120도, 밤은 영하 80도로 온도 차가 200도에 달한다. 집값은 산으로 가는 걸 넘어 달로 가고 있다. 몇 년 전 결혼을 하며 무리해서 대출을 받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 친구들은 따스한 계절이다. 2배 넘게 오른 녀석들도 많다. 부산에서 집을 산 친구들은 오르긴 했지만, 서울 집을 산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전세로 들어가거나 지방 빌라에 사는 친구들은 살얼음판이다. 지금이라도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야 하는 것 아닌지 불안해하고, 부동산 앱에서 실시간 거래가를 수시로 캡처해서 올리며, 지금이 최고점인지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다음 날 계속 올라가는 호가에 좌절한다. 이젠 영끌해도 집은 못 사니, 남은 건 주식뿐이라며 동학 개미 운동에 참여하러 호기롭게 떠났다.

사진=픽사베이

우리 30대는 어떤 단어와 감정으로 기억?

같은 시기, 같은 곳에 태어나, 같이 학교에 다니고 뛰놀며 자란 친구들이다. 하지만 이젠 사는 곳, 직업, 가치관도 확연히 달라졌다. 학연과 지연은 졸업 앨범 속 옛날이야기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한 데 묶어주는 것은 맛집, 코로나, 부동산뿐이다. 맛을 향한 원초적 본능, 세계를 휩쓴 질병에 대한 공포, 안정적인 거주와 부에 대한 갈망. 슬픈 건 서로가 경험하는 본능과 욕구의 온도 차가 점점 커져 간다는 사실이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30대는 어떤 단어와 감정으로 기억될까? 슬픈 예감이 틀리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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