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지도자- 꿈의 나라로

[5일 개정된 한국형 재정준칙 발표가 이슈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약 60%를 놓고 OECD 국가대비 높은 수준이란 경고다. 2~3년후 글로벌 인플레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는 소리도 높다. 이와 관련 반면교사가 될 만한 해외사례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권오용] 

그들은 꿈을 꾸었다. 나라가 주는 돈을 내가 번 돈인 양 썼다. 그런데 그것은 빚이었다. 결국 내가 갚아야 할 돈이었다. 빚잔치가 닥쳐왔다.  장밋빛 꿈에서 깨어나니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국민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십시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던 1946년에 한 지시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OECD의 평균 수준이었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75년 무렵에는 OECD 평균의 70%까지 떨어졌다. 20세기 초 프랑스, 독일에 필적하던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페론의 집권을 거치면서 국제경제 무대에서 문제인 나라로 전락했다.

동시에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신조어를 세상에 데뷔시켰다. 1816년 독립 이후 무려 8번의 국가부도를 경험했음에도 개혁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 결과였다. 유엔 산하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CEPAL)는 아르헨티나 공공부채가 이미 97.7%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또 한 번의 국가 부도가 예고된 셈이다.  

"국민이 원하는 걸 다 줘라 ".  1981년 그리스 총리가 된 아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취임 직 후 각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후안 페론의 말을 그대로 빌려온 듯 했다. 이 말은 그리스를 아르헨티나와 같이 국가부도로 몰아넣었다. 그리스는 파판드레우 총리가 집권할 때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재정이 튼튼한 국가였다. 취임 직후 파판드레우는 재정을 복지에 쏟아 부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시작됐고 출근시간대 대중교통도 공짜가 됐다. 취임 1년 만에 최저임금을 45.9% 인상했다.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제한됐다. 공무원은 제 시간에 출근하면 ‘정시 출근수당’을 받았다. 워낙 지각출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에게 가는 월급이 GDP의 50%를 넘기도 했다. 그 결과 집권 당시 22.5%였던 국가채무비율은 2018년엔 184.8%로 OECD 1위로 솟구쳤다.  

집권기간 중 30만 명이던 공무원을 80만 명까지 늘렸다. 이들을 봉양하느라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율은 39.4%로 전체 실업율 19.3%의 두 배가 넘고 EU에서 가장 높다. 인구의 반이 46세 이상이다 보니 학생보다 연금 수급자가 훨씬 많다. 많은 청년들이 부모의 집에서 부모의 연금으로 함께 살고 있다.

파판드레우가 40년 전에 뿌린 포퓰리즘 씨앗의 결과물이다. 공무원과 노조의 공화국이 등장하면서 70년대까지 탄탄했던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은 같은 시기에 몰락했다.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항만과 공항을 팔아 연명하는 유럽의 문제인 국가로 남게 됐다.  

사진=네이버 캡쳐 (KBS 뉴스) -베네스웰라 시위대, 차베스 전 대통령 동상파괴

“차베스가 바로 국민이다. 당신도 차베스다.” 1999년 집권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혁명가를 자처했다. 가장 먼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무상교육과 저가 주택공급 등 이른바 ‘차베시즘’으로 불리는 복지 정책이 시행됐다. 중남미에서의 반미 연대를 주도하기 위해 이웃 나라에 석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자 재정은 고갈됐다. 무상 복지는커녕 식량도 수입하지 못 할 정도가 됐다.

지난 해 7,374%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으로 지폐가 가로수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남미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몬 볼리바르 장군(1783~1830)을 본 따 이름 지은 ‘볼리바르’화폐는 휴지조각이 됐다. 병원에서는 의약품 부족으로 10명의 산모 중 7명꼴로 사망한다. 생필품 부족으로 폭동과 약탈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먹을게 없다보니 국민 10명 중 9명의 체중이 평균 11kg줄었다.

크고 강한 정부를 표방했는데 실제는 무정부 상태가 됐다. 있으나 마나한 정부를 두고 지금도 부패는 창궐하고 있다. 소득의 창출 없는 복지의 확대는 정부도, 국가도, 가계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기고 베네수엘라 역시 국제 경제무대의 문제인 국가로 뒤처지게 됐다. 

퍼주기를 국가적 과제로 포장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의 주역이었다. 주는 돈에 맛을 들인 국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제대로 된 기업과 사람은 나라를 떠나고 남은 이들은 공항, 항만이나 섬 같은 땅을 팔아 겨우 연명한다.

그러면서도 쪼그라든 소득조차 아쉬워 개혁을 거부하고 다음 선거에 또 다시 포퓰리즘을 선택한다. 곳간은 거덜 나고 거꾸로 성장하면서 빈곤이 평준화되는 나라가 된다. 꿈은 꿈이로되 절대 꾸지 말아야 할 악몽(惡夢)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를 본다. 지난 봄 다리를 크게 다쳐 3개월 간 기브스에 목발 신세를 졌다. 병원을 오가면서 “타다”를 많이 이용했다. 특히 비가 오거나 번잡한 시간에 정말 유용했다. 그런데 그게 입원해 있는 사이 불법이 되어 사라졌다. 국회가 법으로 혁신의 씨앗을 뭉개버렸다. 편리함은 잠시였고 아쉬움은 분노가 되어 오래 남았다.  

인류역사에서 국가 권력은 끊임없이 힘의 확대를 지향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꿈을 꾸며 이들에 열광했다. 이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코로나같은 위기는 그들에게 언제나 명분을 주어왔다. 시민사회는 꿈을 깨야한다. 힘을 합쳐 국가와 정치엘리트들의 힘을 적절히 제어하여야 한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은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차베스는 꿈꾸며 얘기했다. “자본주의는 악마와 착취로 가는 길이다.” 그가 꿈을 꾸는 사이에 나라는 거덜 나고 국민은 나락에 빠졌다. 그의 꿈을 우리가 꿀 이유가 없고 그의 행동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권오용

전 SK 사장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한국CCO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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