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예지의 생각으로 바라보기

[오피니언타임스=곽예지]

청년칼럼을 쓸 때처럼 글을 실명으로 올리다보면 가끔 필명을 만들어 속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족이 이름을 검색해 내 글을 보곤하는데 사실 반갑진 않다. 애석하게도 가족과 맞아 떨어지는 가치관이 거의 없고, 오히려 부끄럽기 마련이다. 스스로 주제를 검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난감해진다. 글감이 없어 머리를 감쌀때면 괜히 실명을 탓하고 싶어진다.

필명을 든든하게 세우고 더 짙고 재밌는 문장을 슥슥 써나가는 상상을 해보지만, 이내 접는다. 핸드폰 기록이 노트북에 공유되고, 전화번호가 인스타그램에 연동되고, 지인의 지인이 페이스북 친구 추천에 뜨는 시대다. 완벽하게 다른 컨셉으로 셋팅을 하고 필명을 쓰지 않으면 더 민망해질지도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뭐, 아직은 나의 이력을 쌓아올리는 것이 우선이기에 필명은 사치다. 또 이름을 내보이고도 겨우 글쓰기를 이어가는데 이름을 숨기면 더 게을러질지도 모른다. 아직은 먼 미래로 미뤄둬야겠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글을 쓰던 페르난두 페소아를 마음에 품어 두는 이유다.

현재 멀티 페르소나는 트렌드가 되었지만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상상과 또 다른 자신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역사가 길다. 일제강점기 근대 다수 언론인들은 필명을 사용했다. 우리가 아는 심훈, 백석, 이육사 등이 모두 필명이다. 더 옛날에는 ‘아호’가 있었다. 본인이 성장하며, 혹은 심경 변화에 따라 새 아호를 만들거나 지인이 지어줬다고 한다. 한 명의 사람이지만 그 안의 다양성과 변화를 이름으로 나타낸 것이다.

현대인들은 아호대신 캐릭터를 만든다. 한 때 사진을 입력하면 그것을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바꿔주는 사이트가 인기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과 영락없는 만화 주인공이 된 모습을 보고 신기함에 너도 나도 해보곤 했다. 그림체로 변환되어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감추고 싶은 욕구가 맞아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업로드하곤 했다.

 또 현대의 멀티 페르소나는 다양한 SNS에 따라 변환된다. 나만 봐도 그렇다. 중2병에 걸려 ‘지킬앤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자인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는, 이제 숨겨놓은 하나의 블로그에는 어디 가서 말 못할 것들을 모두 내뱉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고, 다른 공개 블로그에서는 멋지고 깔끔하게 글 쓰는 번듯한 대학생 컨셉을 밀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재밌고 유익한 게시물을 공유하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말수가 적고 감각적인 힙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곽예지’라는 이름으로 통일 되어있을 뿐, 사실상 여러 ‘나’들이 인터넷에서 삶을 펼치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one day-class)에 참여하는 것도 일종의 멀티 페르소나이다. 평소에는 찌든 학생, 직장인이었던 사람들도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큼은 작가, 도예가, 창조자가 된다. 작업을 시작하고, 그 결과물을 SNS에 업로드 한 후 뿌듯하게 집에 들고 들어갈 때까지 말이다. 다양한 일회적·단기적 프로젝트 등이 도처에 생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페르소나의 유형에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숨기는 일탈로서의 페르소나와, 현실에서의 삶을 보완·보충하는 시뮬레이션적 페르소나,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적 페르소나는 지속되는 현실의 나와 일시적인 나의 모습이 모호히 섞여서 피로감이나 허무함을 동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멀티 페르소나 현상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항상 재고를 해본 후, 즐거음을 안고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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