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 청년칼럼 = 앤디]

 내가 한창 취업을 하려고 준비했던 약 10여 년 전 여기저기서 청년들의 취업이 어려워서 큰일이라고 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신문과 TV 뉴스에서는 그 시절 뉴스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여전히) 청년 실업 문제를 언급하기 바쁘다.
 
날이 갈수록 취업하기 힘든 환경에서 청년들은 각자 희망하는 회사와 기관이 요구하는 스펙을 착실히 쌓고, 그 조직이 표방하는 인재상에 스스로를 욱여넣는다. 그렇게 힘겹게 입사했으면 꽃길이 열려야 할 텐데, 애석하게도 진짜 본 게임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불확실한 비율로 뒤섞여 월화수목금 감정의 업 앤 다운 곡선을 쉴 새 없이 그리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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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임 플레이어가 되고 나면 이것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흐르면 일에서 오는 ‘1의 기쁨’을 위해 ‘9의 슬픔’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균형에서 쉽사리 이탈하기 어려운 건, (금수저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먹고사니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먹고사니즘에 관련된 이야기는 너무도 익숙해 무미(無味)였다가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뒷맛이 쓰다.

장류진 소설집의 대표 작품인 「일의 기쁨과 슬픔」 역시 그러했다. 수평 문화의 분위기만 추구하는 회사에서 ‘사실상 막내’의 역할을 하는 안나, 개발적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하려고 입사했으나  ‘버그 잡기’ 바쁜 케빈, ‘포인트 월급’을 중고거래 앱에서 돈으로 바꾸는 지혜까지.
 
각 인물들이 놓인 상황이 내 것과 정확하게 겹치지는 않아도, '피고용인'이라면 그 애환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관종 대표의 은밀한 인스타 부심을 건드린 대가로 갑을관계의 ‘을’이 어떤 수모까지 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북이 알 지혜의 이야기는 분노를 넘어 숙연하기까지 하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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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

 회사생활 십오 년 만에 포인트 월급을 보고 울었으면서도, 안나에게 갑의 사고 구조는 을과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고 덤덤히 내뱉는 장면에서 그러했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하는 건 포인트가 아니라 돈인데... 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그래서 포인트를 다시 돈으로 바꾸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장면에서는, 불합리한 '갑'질의 피해자로서 정신승리의 타협점을 찾는 건 냉혹한 자본주의 속 '을'들이 짊어져야 하는 고독한 멍에임을 새삼 (다시) 깨닫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에게 일의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안나에게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있었고, 케빈에게는 레고가 있었고, 거북이 알 지혜에게는 람보, 마쎄, 페라라는 세 마리의 거북이가 있었다. 일에서 오는 슬픔을 일의 기쁨으로 치환하려는 자기들만의 방식이 있던 것이다. 다만 ‘일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아닌, 일에서 오는 슬픔의 대가 월급을 교환해서 얻은 기쁨이 얼마나 지속성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에 찬 답을 구하지 못했다. 현대사회의 피고용인으로서 느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밸런스는 워라밸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로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하고 임시방편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일까. 안나가 회사에 남아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을 직관하기 위해 조금 비싼가 싶은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하고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자위하는 부분에서 그 어떤 한계가 느껴졌다. 그것은 매월 월급날마다 반복되지만, 해결되지 않는 나의 한계기도 하다.
 
 헤아려보니 다음 주면 월급날이다.
(진입한 것만 치면 감지덕지했다가도) 아무래도 역시... 
일은 기쁨보다 슬픔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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