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일부역자에 토착왜구 자식이런가? 내게 인마살상용 짱돌을 던지시라.

마치 친일 판정관인 듯한 소설가 조정래의 말에 따르면 내 아버지는 악질 친일파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고향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일본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으니 친일파요, 졸업 후 귀국해 조선총독부 공무원으로 일했으니 친일부역자다. 또한 해방 후 농업은행을 거쳐 재무부에서 평생 일하고 은퇴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199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활하게 숨어 있어 미처 척결하지 못한 토착왜구라는 거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나는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웠지만,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완장을 차고 친일 판정을 하여 마치 삼족까지 멸하겠다는 식으로 서슬 퍼런 조정래나 광복회장, 문빠와 대깨문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착잡하다.

아버지는 냉정하고 치밀한 분이셨지만 자상하고 유머 또한 많은 분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에는 깊이가 50자 가량이나 되는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매일 밤마다 그 우물에 빠지는 꿈을 꾸다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깨곤 했는데, 엄마는 ‘키가 크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포근히 안아주며 나를 달랬다.

그런데 묵묵히 바라보던 아버지는 가까운 주말, 인부를 불러 우물을 메워버렸다. 상하수도사정이 좋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 그 우물은 동네사람들의 식수원이기도 했고, 냉장고이기도 했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당황했고, 집안식구들조차 반대했다. 형들은 ‘너 하나 때문에 동네 사람이..’ 라며 쥐어 박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 하나 때문에’ 우물을 메워버렸고, 큰돈을 들여 동네사람을 위해 우물 대신 ‘특별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펌프를 설치했다.

나는 아버지와 친한 친구였고, 늘상 동지였다. 당신의 식민지 청년시절 고뇌와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나의 번뇌와 고민에 함께 하며 친구로서 조언과 사랑의 말을 해주셨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내 삶을 꾸리기도 했다.

아버지라서가 아니라ᆢ 식민지 청년, 식민지 지식인으로 겪었던 아버지의 민족적, 시대적 고뇌와 유신독재 치하 나의 청년대학생 시절 고뇌는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실시간으로 아이덴티파이 된다. 아버지는 90년전 일본 유학생시절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나는 40년전 대학시절 짧게나마 빵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는 아니다. 그저 식민지 청년으로 작은소리로 울었을 뿐이다. 나 역시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운동가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다. 그저 군사독재, 유신독재 시대의 아픔에 작게 울었던 수많은 청년 학생 중 하나였을 뿐이다.

나는 1973.3~1980.2, 온전히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박정희 치하의 청년이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운동권이라 할지라도 분명 '여러 부류'가 있었다. 운동권이 아니던 사람들 또한 여러 부류가 있었다. 집안형편이 어렵거나 온 집안식구들이 오직 자기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은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슴에 못 박는 아픔을 불사했던 운동권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지도층,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게 썩은 사회를 바꾸는 지름길이라 했던 친구도 많았다. 나도 그런 부류의 학생이었다.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코피 터지게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서클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배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외면하는 게 학생으로서 과연 온당한 것인가'였다.

사회문제는 구조문제 이전에 존재론적 문제라는 것쯤이겠는데 지금은 '그 둘이 따로 일 수 없고 같이 가는 것임'을 알지만 당시는 선배들 말빨이 맞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한다고 생각한 것일 뿐, 민족과 역사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비운동권이 전부 이기적으로 살았던 게 아닌 것처럼, 운동권이면 모두 의식이 투철하고 희생적이었다고 보는 건 내 체험으로도, 기억으로도 현실과는 엄청나게 괴리감 있는 얘기이다. 하지만 운동권에 쓸만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게 '다는 아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정치와 정권을 장악하고 국회까지도 완전히 점령한 듯한 이른바 586 운동권과 그 배후와 정치적 힘이 되는 문빠와 대깨문, 나는 이제까지 그들이 대체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는 대체 뭘 하겠다고 “나. 를. 따. 다. 다....” 라고 도무지 혀짧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안희진
 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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