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잡설, 시대의 역설

[ 논갯닷컴=칼럼니스트 방제일]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어야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늘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명마(名馬)가 있다고 하여도 노예의 손에서 욕을 당하고, 마구간에서 (보통의 말들과) 나란히 죽게 될 뿐, 천리마로 불리지 못한다. 천리마는 한 끼에 곡식 한 섬을 먹어치우거늘 말을 먹이는 자들이 그 말이 천리를 달리는 달릴 수 있는 말임을 모르고 먹이니, 이 말이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일지라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여 힘이 부족하니 그 뛰어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통 말들과 같아지려해도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어찌 그 말이 천리를 달릴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

그 말을 채찍질함에 그에 맞는 도리로서 하지 않고, 그 말을 먹이면서 그 재능을 다할 수 없게 하며, 울어도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채찍을 쥐고 다가가 “천하에 좋은 말이 없구나!”라고 한다.

아!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정말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백락이 없는 것인가?

- 한유, 잡설

글을 전개하기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은 이미 3년 전에 썼다 며칠 전 퇴고한 글입니다. 3년 전 개인적으로 썼던 글을 지금에서야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며칠 전 읽은 기사 때문입니다. 한 택배노동자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그의 하루를 상상해봅니다. 얼마나 고달팠을까, 마음 한 편이 아립니다. 미욱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송팔대가로 손꼽히는 한유란 인간의 삶에 대해 조금 말해보자. 그는 가진 필력과 능력에 비해 굉장히 한량스런 삶을 살다 세상을 하직했다. 물론 그가 남긴 글들을 여전히 살아남아 한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문장이라 칭송받는다. 그러나 한학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한유’란 문장가는 그저 낯선 인물일 것이다. 나 또한 대학에서 ‘한유’의 글을 주워듣지 않았다면 결코 ‘한유’란 인물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일말의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약 3천만 원, 4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대학을 다녔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문장은 슬프게도 논어와 맹자 몇 구절, 한 시 몇 편, 그리고 한유의 잡설 정도다.

잡설,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헛소리’ 정도로 치환할 수 있다. 한유는 이 잡설에서 ‘천리마’와 백락에 관해 말한다. 세상에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이 없어서 천리마가 천리마로서 살아가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백락’은 사람이다. 본명은 손양(孫陽)으로 주나라 때 인물이며 당시 말을 잘 감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했을 나는 내가 ‘천리마’인 줄 굳게 믿었다. 길고 지루했던 학업을 끝마친 후 세상에 나오면 나를 알아봐 줄 백락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지난 몇 년 간 내가 배운 교훈은 슬프게도 내가 천리마가 아니란 사실과 이 세상 백락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따라서 한유의 잡설은 그저 기억 한편에 묻힌 채 남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좋은 대학도 나오고 그 치열한 경쟁 사회를 이겨낸 이 시대의 청년들은 왜 다들 공무원이나 대기업에만 몰려들까? 그뿐 아니라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세대들은 왜 88만 원 세대, 혹은 N포 세대가 된 것일까?

여기서 잡설의 내용을 상기하며 문제를 거꾸로 복기해보자.

“세상에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백락이 없는 것인가?”

한유는 잡설에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는다.

한유가 살았던 시대와 달리 요지경인 지금은 천리마도 많고 백락도 많다. 문제는 백락도 있고 천리마도 이렇게 많은데 왜 실업률은 그대로이고 경제는 늘 어렵다고만 하는가?

그 이유는 천리마가 먹을 양식이 부족하고, 달릴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등바등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천리를 능히 달릴 수 있어도 결코 달릴 수 없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백락이나 천리마의 안목과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경제 체제와 일자리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통계청이나 여론조사 기관은 때가 되면, 청년 실업률을 발표한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8.9%로 약 36만 4천명의 ‘천리마’들이 달릴 곳은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돼 정부에선 어떻게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취임식을 가지며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일자리 창출’과 ‘청년 실업’ 해소였다. 그러나 취임한 지 천일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해소는 요원해 보인다.

사실 이것은 현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10여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일자리 창출과 청년 실업을 해소한다고 했지만 결국 해내지 못했다.

그러면 대체 이 실업률과 경제 체제, 일자리를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근본적으로 대안은 없다. 대안이 있었다면 똑똑하다는 대한민국 경제 관료나 학자들이 이미 대책을 내놓아도 수백번은 내놓았을 것이다.

넘쳐나는 '백락과 천리마'가  문제!

어쩌면 이것은 백락과 천리마가 넘쳐나는 시대적 상황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물론 때때로 누군가는 작금의 청년세대들이 눈높이를 낮추고, 젊음을 불살라 열정페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앞선 세대가 살아왔던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하는 것보다 꿈의 직장인 내 집에서 공상만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욜로다. 부모님 세대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진=YOLO ( 픽사베이)
사진=YOLO ( 픽사베이)

천리마들이 노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악랄한 백락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백락들은 깨달았다. 바로 어떤 말을 선택해도 ‘천리’를 능히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쥐꼬리만한 곡식 한 섬만 줘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실은 덤이다. 그러다 천리마가 쓰러지면 다른 천리마로 갈아타면 된다. 이 시대의 백락들이 가진 보편적 생각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선택해도 ‘천리마’처럼 부릴 수 있다는 것. 안타깝고 슬픈 시대의 역설이다.

뉴노멀이라 불리는 시대, 그래서 한유의 잡설은 유용한 듯 참으로 무용하다.

이것은 정녕, 한유의 역설일까, 아니면 시대의 잡설일까. 아, 애달프도다.

 방제일

 씁니다. 제 일처럼, 제일처럼!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