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검찰 간부가 검찰을 떠나며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고 개탄했다. 법의 논리로 재단되야 할 검찰의 기능에 정치가 개입해 엉망이 됐다는 얘기리라. 기업에만 있었던 내가 보면 같은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정치가 기업을 덮어버렸다” 는 경제 논리에 따라야 할 기업 경영에 정치가 개입해 엉망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진=네이버 캡쳐  (KBS 뉴스)
사진=네이버 캡쳐 (KBS 뉴스)

재계는 1999년 “사회공헌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당시 전경련의 기획본부장이었던 필자는 고베(神戶) 대지진이 일어날 당시(1995년) 일본에 주재하면서 일본 기업과 게이단렌(経団連)의 체계적인 구호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일본 재계는 구호금보다 자원봉사, 현장에 필요한 물품을 회원사가 직접 제공해 주는 방식이었다. 재난 현장에 나가있는 게이단렌 직원이 회원사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조율하고 물품 제공을 주선하고 있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구호금부터 거두고 사후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묻지도 않는 한국의 관행과 비교해 보면 충격적이라 할 만큼 현장 중심의 체계적 지원이었다.

당시 김우중 전경련회장은 사회공헌위에 거는 기대가 컸다. 기업으로 오는 유·무형의 청탁을 모두 전경련으로 돌려 무분별한 중복 낭비 여부를 체크하자고 했다. 기업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판을 키워서 국민들이 실제로 기업의 공헌을 체감할 수 있게 하자고도 했다.

미국의 United Way같이 국가 차원의 기구를 만들어 기업의 기부가 필요한 곳에 적기에 공급될 수 있는 통로로 삼자고도 했다. 이는 나중에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로 성사되기도 했다. 어쨌든 창립총회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참석하기로 해 행사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주었다.

사진=United Way (픽사베이)
사진=United Way (픽사베이)

그런데 정치가 기업을 덮어버렸다. 창립총회 하루 전 청와대에서 연락의 왔는데 여성재단의 박영숙 이사장이 이희호 여사와 함께 온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혼자 오기가 머쓱해서 같이 오나보다 했다. 평민당 부총재를 지낸 정치인 출신이지만 당시에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빈께서 같이 온다는데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수도 없고 그냥 영부인 옆자리를 비워 놓는 수밖에 없었다.

행사는 잘 끝났다. 그런데 그날 오후 5대 그룹에 각 1억 원씩 할당됐다. 시민단체  참석자 중 고위층  한 사람이  5억 원을 요청했다고 했다. 결국 기업의 사회공헌을 다짐하는 행사는 정치인 출신이 경영하는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모금으로 출발한 셈이 됐다. 5억 원짜리 행사가 됐다.

기업의 순수한 뜻이 정치의 먹잇감이 됐다. 정치가 기업을 뒤덮어 버렸다. 박근혜 정권에서 발생했던 미르·K재단의 모금도 어찌 보면 이 패턴이 정확하게 재현됐다. 사회공헌이라는 기업의 순수한 활동에 정치가 끼어들어 판을 뒤엎어 버린 사건이었다.

사진=나무위키
사진=나무위키

1992년 여름, 필자는 전경련 기자실에서 흘린 선경(현 SK) 홍보실 직원의 눈물을 기억한다. 선경 그룹이 정부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한 직후였다. 당시 선경의 최종현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이라는 이유로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여당의 대선 후보인 YS는 4개월 남은 선거에 악재라며 사업자 선정의 취소를 요구했다. 반면 정부는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면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의 공정성이 훼손된다며 안 된다고 했다. 선경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 와중에 최종현 회장은 어느 비공개 행사에서 당시 김영삼 후보를 만났다. 행사장에 도착한 YS는 최회장을 보자마자 대뜸 “최회장은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싫은 모양이지?”하고 물었다고 한다. 이동통신 산업의 국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유일한 관심은  대통령 당선 여부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경제를 덮어버린 것이다.

직접 만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조금은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최회장이 너무 순진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최회장은 사업권 반납을 준비시키고 결국 사업자로 선정된 지 1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의 출범이 몇 년 늦춰지게 된 것이다. 결국 YS정권의 말기, 우리나라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가 초래됐다.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도 기업을 뒤덮은 정치의 판은 변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다음 날 MB의 측근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제 이 인사는 얼마 후 청와대의 고위직에 임명됐다. 호텔 신축 문제로 개발이 보류된 송현동의 땅에 대규모 IT, 문화 복합 콘텐츠 단지를 만들려고 하니 백억이 넘는 돈을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 요구했다.

일종의 당선 축하금이었다. 어떻게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됐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나. 다른 라인을 통해 파악해 보니 MB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사업은 안 된다고 못을 박고 다른 그룹과도 교감을 나눴다.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 사례에는 정치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기업은 구린 데가 많고 돈이 있으니 권력이 요구하면 갖다 바친다. 나중에 벌어 채울 테니 먼저 가져가는 놈이 주인이다."  이런 왜곡된 기업관을 가지고 경제를 운용한 것이 정치였다.

얼마 전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정치 4류, 행정 3류, 기업 2류라고 말했다. 유명한 베이징 발언이다. 이 말이 정치 9단이라고 하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회사는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회장은 나라 밖에서 떠돌았다. 4류 정치가 2류 기업을 덮었다.

그 후 기업이 세계 1류로 나가는 동안 우리 정치는 어찌 됐는가? 이런 정치에 뒤덮이고도 4류로 전락하지 않고 1류로 성장한 한국 기업이 새삼 자랑스러워진다.

권오용

前 SK 사장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한국CCO클럽 부회장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