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이호준]

봄에는 꽃바람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가을엔 단풍소식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아무리  코로나 감염병이 극성을 부려도 일은 해야 합니다. 다시 길 위에 선 이유입니다. 남도로 가던 길에 고향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가 누워 계신 곳입니다. 한때 집성촌이었던 그곳은, 구십 넘도록 고향을 지키던 재종형님이 돌아가신 뒤 일가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산소에 들러 인사를 마치고 제가 태어난 동네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한 바퀴 돌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마을은 연극이 끝나고 막을 내린 무대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났다고 해도 밭에서 뒷설거지를 하는 노인 몇 분쯤은 뵐 줄 알았는데,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 때 그 번성했던 마을이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전남 영암의 어느 마을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마을은 수백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고 많은 벼슬아치를 배출한 곳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커다란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을 정도로 ‘잘 나가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들만 몇몇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60대 이하는 한 사람도 없고, 허리 굽은 70대와 80대 할머니들만 남았더랍니다. 친구는 이대로 가면 20년 뒤에 마을이 존재할지, 사람이 살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더라고 한탄을 했습니다. 산술적 계산으로 금방 답이 나옵니다. 70대 이상만 있고 향후 외부 유입이 없다고 가정할 때, 평균 수명을 90으로 잡는다면 20년 후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도시에 살다가 퇴직하고 고향으로 온 사람은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10년 동안 단 한 집도 없었다고 하더랍니다.

친구는 고향이 모두 사라지게 생겼다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퇴직 후에라도 돌아가서 고향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노인 취급을 받아도 고향에 가면 청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니 ‘농촌 공동화’니 하는 말들은 조금도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근 반세기에 걸쳐서 진행된 일이니 어찌 보면 식상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십은 아이, 육십은 청년, 일흔은 장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고, 주소지는 농촌에 있는데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에 계신 어르신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런데도 그 이야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해서 심각성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농촌인구의 고령화는 노동력의 급격한 쇠퇴와 노인들의 건강, 고독, 빈곤 문제를 불러옵니다. 아울러 농업과 농촌 경제, 그리고 농촌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고, 농촌의 붕괴는 ‘지방’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2018년 6월 기준 전체 228개 지자체에서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이 경북 봉화군, 영양군 등 11곳, 소멸위험 진입 단계에 있는 곳이 충남 예산군, 전남 영암군 등 78곳에 달한다는 통계(한국고용정보원)도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한국의 사회지표’도 농촌의 고령화와 공동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평균 고령화율이 14.9%였는데 전남의 고령화율은 22.3%에 달해 초고령사회를 이미 경험하고 있었고, 경북(19.8%)과 전북(19.7%)도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청년층 유입은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농촌 공동화 문제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남(1%)과 전북(0.9%)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감소율을 기록했는데, 전체 인구 5170만9000명 가운데 절반인 2584만4000명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실을 전했으니 대책도 제시해야 하는데, 연구자나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막막한 일입니다. 보통 이런 질문이 나오면 “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에도 농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자체들은 젊은 농업인 유치를 위해 귀농 희망자에게 토지 및 정착금을 지원하고 농촌 정착 컨설팅 등을 진행해 왔고, 정부 차원에서도 영농·영어조합법인의 법인세 감면 등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또 기업체와 농촌마을 결연 맺기‧농촌관광 붐 조성‧내 고향 농산물 사주기 캠페인 같은 노력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무엇도 빈사 상태의 농촌을 살리는 특효약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농촌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방법이 없어요.”

질문의 길이에 비해 대답은 섭섭할 정도로 짧았습니다. 본인도 그동안 많은 고민을 해봤겠지요. 그러면서 “깜짝 놀랄 만한 획기적 지원이 있으면 혹시 농촌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덧붙였습니다. 획기적 지원이 답일까요? 하긴 최근에 ‘이탈리아 중부 해발고도 1200m에 위치한 한 마을이 인구 감소로 마을의 존폐 위기에 놓이자 파격적인 지원금을 내걸고 청년 유치에 나섰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확신은 없습니다. 그 무엇이 10년, 20년 뒤 수없이 사라져갈 농촌 마을을 다시 살릴 묘안이 될지. 차라리 제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듯이 대대적 캠페인이라도 펼치는 게 더 나을지…. 고향에서 돌덩이라도 담아온 듯 가슴에 묵직한 게 얹혀 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