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 열린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독일 작가 카리나 스미글라 보빈스키의 작품 ‘ADA’를 대하며 순간 움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상케하는 'ADA'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상케하는 'ADA'

올 한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이미지의 흑백 버전 같았기 때문이다. 온통 흰 방에 들어선 지름 3mPVC풍선은 거죽에 뾰족한 목탄들이 꽂혀있어 관객이 툭 밀치면 헬륨가스 주입한 풍선이 떠다니는 과정에서 목탄이 천정 바닥 벽면에 검은 선과 점의 흔적을 남겼다.

2016년 작이니 코로나 시대를 투영한 작업이랄 수는 없지만, 뽀족한 관이 달린 구의 모양이며 공간을 차츰 오염시키는 과정이 전염력 강한 코로나와 빼닮았다. 팬데믹시대를 앞서 내다 본 듯한 예술가의 상상력과 실험 정신이 경이로웠다.

창원 성산아트홀과 용지공원에서 11월 초까지 열린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행사다. 한국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과 문신 등 걸출한 조각가를 배출한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조각 장르로 특화한 국내 유일의 조각비엔날레다.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시작으로 2012년 첫 비엔날레를 개최했고, 올해 5회째 행사에는 34개국에서 86개팀 94명의 작가가 출품했다.

코로나 시국에 외국 작가의 현지 작업이 불가능했고 917일 개막 이후 행사 진행이 다소 제한적이지만 10월엔 출품작의 온라인 전시, 무관중 아티스트 토크 등으로 관객과 비대면 만남을 병행해왔다.

야외공원의 나무 뒤에 캔버스처럼 철판을 설치한 이명호의 '나무 그리고 색창원 #1"
야외공원의 나무 뒤에 캔버스처럼 철판을 설치한 이명호의 '나무 그리고 색창원 #1"

조각이라면 대리석 브론즈 나무 소재의 육중하고 딱딱한 입체조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창원비엔날레는 고정관념을 너머 조각 같지 않은 조각에로의 시선을 일깨웠다. 주제부터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 

설치대 위의 조각 뿐 아니라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는 비조각적 조각을 비롯해, 전통 소재와 기법에서 벗어난 작업이 다양했다. 깎고 쪼거나 틀을 만들어 떠내는 조각 뿐 아니라 거품 수증기 옷감 옷 흙 빛 폐플라스틱 영수증부터 살던 집의 나무문 계단 및 뜯어낸 벽지까지 일상용품까지 활용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코트디부아르 작가 모민폴린의 '체스트 비드'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코트디부아르 작가 모민폴린의 '체스트 비드'

전시장 1층 중앙에는 플라스틱통의 탑에서 거품이 분수처럼 보글보글 흘러내리는 모나코 작가 미셀 블레이지의 부케 파이널 3’, 선풍기 바람에 일렁이는 옷감에 비치는 붉은 빛이 화염처럼 일렁이는 아제르바이잔 작가 놀란 타히리의 작품이 강렬했다.

모나코 작가 미셀 블레이지의 거품조각 '부케 파이널3'
모나코 작가 미셀 블레이지의 거품조각 '부케 파이널3'

이밖에 스티로폼 한지 사진으로 만든 돌이 떠있고(이택근 류정민). 형형색색의 망사를 뭉쳐 입체감을 살리거나(마크 게리), 창원 지역 옛 주택의 벽지를 뜯어낸다든지(연기백), 모빌처럼 빙빙 도는 구리선(양리에) 등은 결코 무겁지 않은, 가벼운 조각들이다.

집 내부의 벽지를 뜯어 설치한 연기백의 '가리봉 133'
집 내부의 벽지를 뜯어 설치한 연기백의 '가리봉 133'

영상 속에서 조각용구로 무언가를 만들지만 정작 작품은 보이지 않거나(안카 레스니악), 작품 ‘ADA’처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미완성 작품까지.

보라색 네온의 마크 퀸의 셀프가 여기 있을 뻔했다는 김성호 총감독과 큐레이터들이 영국작가 마크 퀸의 자소상 셀프를 전시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실패 경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작품이다

 아트홀 입구에 설치된 최정화의  과일여행 프로젝트 중 석류
아트홀 입구에 설치된 최정화의 과일여행 프로젝트 중 석류

야외전시작도 다채로웠다. 아트홀 입구에는 최정화의 과일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복숭아, 석류, 호박, 딸기 등 9종의 초대형 과일 풍선 작품이 1주 단위로 관람객을 맞았다.

아트홀과 인접한 용지공원에는 분홍색 풍선검 같은 시몬 데커 작 버블 검 인 창원’, 오솔길 위로 타원형 철제에서 주야로 물안개와 빛을 내뿜는 호주작가 제임스 탭스콧의 아크 제로가 공원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밖에 나무 뒤로 홀로그램을 입힌 철판을 캔버스처럼 설치한 이명호의 작품, 기존의 자연석과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수석이 공존하는 중국작가 쩡루의 작품도 자연 풍경과 하나가 되는 비조각적 조각의 의미를 담아냈다.

특별전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 전

아트홀 지하에서 열리는 특별전 이승택, 한국의 비조각전은 비엔날레의 주제를 앞서 실험하고 선도했던 노대가의 작업을 한데 모은 흥미로운 전시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꺼구로 생각했다, 꺼꾸로 살았다는 작가가 새끼줄 어망 머리털 돌멩이 같은 비조각적 소재, 바람 공기 물 불 흙 등 동양적 비물질 세계를 끌어들인 전위적인 실험과 예술 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아트홀 지하  옛 식당 자리에  설치된 아시아  청년 미디어 조각전
아트홀 지하 옛 식당 자리에 설치된 아시아 청년 미디어 조각전

아트홀 지하의 옛 식당을 활용한 공간에선 아시아청년미디어 조각전이 열렸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